아버지는 몇 해전에 돌아가셨다. 하지만 돌아가신 아버지가 아들에게 맥주를 샀다. 합법적인 음주 연령이 된 후 첫 맥주였다. 트위터로 전해진 이 ‘아버지의 맥주’ 스토리에는 50만개가 넘는 ‘좋아요’가 붙었다.
사연은 이렇다. 6년전 암으로 숨지기 전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따로 10달러를 남겼다. 성인이 될 아들의 맥주 값이었다. 어머니와 누이는 이 비밀을 지켰다. 매서추세츠의 이 청년은 21살 생일에 아버지의 10달러로 첫 맥주를 샀다. 아들의 기쁜 날에는 늘 함께 했다는 아버지의 동행은 그의 사후에도 이어졌다. 맥주를 마시며 청년은 건너편에 앉아 미소 짓는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아버지가 그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아들은 알고 있었다.
맥주 회사가 이런 이야기를 놓칠 수 있나. 버드와이저에서 맥주 8케이스를 집으로 보내왔다. “맷, 첫 맥주는 아버지가 사셨지만, 다음 맥주는 우리가 낼께.” 라는 트윗과 함께.
지난 주말 또 한 번 파더스 데이가 지나갔다. 다시 아버지 됨을 생각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떠난 후에도 남게 되는 세상 아버지들의 메시지는 어떤 것들일까.
바이든 대통령의 아버지는 폴로와 요트를 즐겼던 성공한 비즈니스 맨이었다. 그도 한때 실직자로 술에 빠져 지낸 적이 있다. 중고차 세일즈맨으로 재기에 성공한 그는 아들에게 늘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조, 얼마든지 넘어질 수 있어, 문제는, 얼마나 빨리 다시 일어서느냐 하는 것이지.”
바이든이 교통사고로 아내와 딸을, 뇌암으로 장남을 잃는 아픔과 정치적 역경을 딛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를 이끈 것은 아버지의 이 말이었다고 한다. “남자가 좋은 아버지, 여자가 좋은 어머니로 불리는 것 이상은 없다”는 것이 아버지의 말이었다고도 회고한다. 그에게서 자상한 아버지, 할아버지의 풍모가 느껴진다면 이 때문일지 모른다.
전임인 트럼프 대통령은 아버지의 훈육이 이와는 달랐다. 거물 부동산 업자였던 아버지는 아들들을 ‘킬러’로 키우기 원했다. 아버지가 기대를 걸었던 큰 아들은 40대 초에 알코올 중독으로 숨졌다. “형은 킬러가 되지 못했다”고 동생은 후일 형의 죽음을 회상했다. 작은 아들 도널드는 12살에 군사학교에 보내졌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결과는 수단을 정당화시키고, 타인의 대한 공감은 허약함의 표시”라고 배웠다.
상담 심리학자가 된 숨진 형의 딸 메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공감 능력 부족이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무관심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약한 것을 경멸하게 한 아버지의 가르침이 코로나로 그렇게 많은 희생자를 낸 원인의 하나라며 대통령 삼촌과 날을 세웠다.
한 정치 평론가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의 정치인들, 특히 대통령들은 유달리 ‘아버지 문제’가 많다고 한다. 아버지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존재감이 없고, 중독에 빠지거나 학대를 일삼은 아버지도 있었다.
포드 대통령의 아버지는 폭력적인 알코올 중독자였다. 그가 태어난 지 16일 뒤 어머니는 갓난 포드를 안고 집을 나왔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정육 칼로 모자를 죽이겠다며 덤벼들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재혼했고, 포드는 22살 때 ‘레슬리 킹 주니어’에서 ‘제럴드 포드’로 성을 갈았다.
레이건 대통령 아버지도 심한 알코올 중독이었다. 술에 취해 현관 앞에 쓰러진 아버지를 질질 끌어 집안으로 옮기기도 했다. 아버지의 머리칼은 눈에 묻혀 있었다. 레이건이 11살 때 일이었다. 그는 평생 알코홀릭 아버지에게서 받은 상처와 씨름해야 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유복자였다. 그가 뱃속에 있을 때 차 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 클린턴은 계부가 문제였다. 술에 취해 어머니를 때리기 일쑤였다. 계부의 가정폭력은 클린턴이 힘으로 맞설 수 있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알려진 대로 오바마 대통령의 아버지는 케냐에서 온 유학생. 그가 2살 때 아프리카로 돌아가 버리면서 부자 관계는 사실상 거기서 끝났다.
이런 아버지를 갖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아버지는 가족의 빵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지금은 많은 가정에서 어머니들도 빵과의 전쟁에 함께 참가하고 있다. 아버지의 역할에 변화가 불가피하고, 요구되는 것은 더 다양해졌다. 사회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아버지의 역할도 있다. 육아 휴가, 융통성 있는 근무시간제 등 아버지를 배려한 사회적 장치들은 더 갖춰져야 한다. 코로나로 확산된 재택근무가 이 점에서는 도움이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버지도 처음 해 보는 것이다. 연습을 한 뒤 아버지로 데뷔하는 경우는 없다. 어떤 아버지가 될 것인가, 공부가 필요하다. 결혼 교실은 있고, 어머니 교실은 임산부 교실 등으로 세분화될 정도로 다양해지고 있으나 아버지들을 위한 교육은 거의 없거나 드물다.
결혼 소식을 전했던 아이들에게서 이제 이혼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아이가 있는 젊은 부부들이다. 갈등의 원인 중 하나로 잘못된 육아와 가사 부담이 전해지기도 한다. 이민 가정의 2세들이 바른 부성애를 집에서 배우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아이는 버려 둔 채 싱글 때처럼 게임에 몰두하는 철없는 아빠도 있다고 한다. 젊은 부부들은 참고 살려 하지 않는다. 이 무렵이면 아버지됨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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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