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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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인생

2022-06-20 (월) 최수잔 / 워싱턴 두란노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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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가 시들어 갈 즈음 권사님은 떠나셨다. 바람이 불 때 흩어지는 장미꽃잎을 주우며 권사님을 생각한다. 그분의 성격대로 남에게 시든 모습 보이지 않고 자식들에게 폐 안끼치고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장미향기 풍기고 예쁜 모습 남기며 40여일 아프다가 고이 하나님 품에 안기셨다. 귀여운 증손주와 손주들을 남기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어떻게 외롭고 두려운 미지의 세계로 가실 수 있었을까.
91세의 어머니가 갑자기 밤에 호흡곤란으로 쓰러져서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입원하셨다. 평소에 건강하셨던 분이라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고 깨어난 후 말도 잘하고 정신도 또렷했고 문학을 좋아해서 그 와중에도 문학회를 염려하며 잘 이끌어가라는 당부까지 하셨다.

문학회의 고문이고 기둥인 인자하신 권사님이다. 네 곳의 장기에 크고 작은 문제가 있다는 의사의 진단으로 자녀 사남매가 모여 의논을 했다. 모두들 어머니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효자들이다. 그러나 사랑 하는 방법이 달랐다.
어머니를 좀 더 나은 의료진이 있는 큰 병원으로 옮겨서 적극적인 치료와 약처방을 해보자는 작은 아들과 나이가 많으니 이곳저곳 힘들게 수술 혹은 치료를 받는 건 무리니까 어머니가 원하시는데로 편안하게 해드리자는 세 남매의 의견이 있었다.

거친 반발에도 불구하고 작은 아들이 큰 병원으로 옮겨서 초음파검사 등으로 장기 하나는 치료 되었지만 그걸로 인해 여러 검사를 함으로써 어머니 상태가 더 악화되었다고 큰 소리내는 세 형제들과 삐걱거리는 사이가 되었다. 약간이라도 생명연장이 가능하다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치료를 받으시도록 노력하겠다는 작은 아들에게 나는 전적으로 힘을 실려주며 쾌차하길 기도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생략..” 라는 성경구절을 믿고 기적의 은혜주시길 기대하며. 며칠 후 권사님은 호스피스에서 힘들게 호흡하며 듣기는 해도 눈을 못뜨는 상황이 되었다. 믿음이 돈독한 전도사인 막내딸에 의하면 그냥 고통없이 편하게 꽃길을 가시게 하는 게 자식의 도리라고 한다.


그곳에서 하는 일은 하루 몇번 물수건으로 몸을 닦고 고통을 덜기위해 모르핀을 주는 것이다. 영양제는 커녕 물과 링게르 액도 없고 그걸 주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인간의 무력함, 인생의 허무함, 슬픔이 마음을 짓눌렀지만, 천국을 염두에 둔 자녀들은 오히려 평온한 마음이다.
정이 많은 작은 아들만 제외하고. 이름모를 풀꽃들이 대지를 예쁘게 장식하고 푸르고 푸른 나무숲 사이로 하늘은 구름 한점없이 청명하다. 바람이 솔솔 불고있는 연못 곁으로 어미 캐나디언 기러기는 막 걸음을 시작한 세 마리 새끼들 돌보느랴 눈을 떼지 못하고 그 뒤로 대견스러운 듯 엉덩이를 씰룩대며 걷는 아비의 발자욱에선 행복이 듬뿍 묻어나고 있다. 연못도 덩달아 행복의 동그라미를 그려낸다.

생명은 소중하다. 그 소중한 생명을 주시는 것도 거두시는 것도 만물을 주관 하시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특히 인간에게는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역할을 주셨기에 그가 갓난 아기든 백세를 넘은 노인이든 모든 사람은 귀한 존재이다. 단 한 번 주어지는 인생이다.

청교도 목사이며 작가인 코튼 매서(Cotton Mather)는 “우리가 천국에 가기 전까지는 우리가 한 기도의 그 큰 영향을 다 알 길이 없다” 라고 했다.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는 나에게 어떤 기도가 전정으로 권사님을 위한 기도였을까. 희망의 끈을 꼭 잡고 의술의 힘으로 좀 더 사시게? 아니면 평안하게 권사님이 원하시는 대로? 지나고 보니 주님은 단지 우리가 바라는 것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 가를 알고 계심으로 주님에게 머물길 원하시는 것이었다.
‘육신의 죽음은 영원한 구원에 대한 소망과 약속이고 십자가 복음은 죽음의 공포에 자유를 선포 한다’ 는 말씀을 붙들고 주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구원의 아름다운 세계로 가신 권사님을 존경한다.

<최수잔 / 워싱턴 두란노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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