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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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No)가 예스(Yes)였던 아버지

2022-06-19 (일) 전종준 / 변호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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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날이 다가왔다.
매년 이맘 때 쯤이면 어떤 선물을 해드리나, 어디를 모시고 갈까 하며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 고민마저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아버지가 나의 곁을 떠나신지도 벌써 3년이 넘었는데 하늘나라에도 아버지 날이 있을까?
요즈음 바깥 날씨가 무덥다. 이런 날이면 아버님이 정성껏 농사지으신 온갖 채소들이 생각난다. 뒤뜰 가득히 심은 상추, 고추, 깻잎, 오이 등…
너무 더워서 나가지 마시라고 해도 부득 나가시어 곱게도 가지런히 심어 놓으셨던 그 밭이 이제는 잡초만 무성하다. 아버님의 빈자리가 문득 느껴진다.

정성껏 심으신 채소를 깨끗이 씻어 잘게 자르시고 여름에는 그 온갖 채소로 밥을 비벼먹곤 했는데 지금은 다 사와야 한다.
“몸은 귀찮게 굴어야 하고 마음은 편하게 하여야 한다”며 늘 움직이시던 아버님이 생각난다. 이제 나도 아버지가 되어 큰 자식을 바라보며 아버님의 마음을 조금은 알 듯 하다. ‘혀 밑에 정이요, 보는 게 정이다’ 라고 하시면서 효도란 부모와 자주 대화하며 같이 식사를 하는 것이라 하셔서 노력은 한 것 같다. 그 덕분인지 아버님은 내게 인생의 스승이요 친구 같은 분이셨다.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아버님의 조언은 늘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고 의지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 아버님이 자식한테 말씀하실 때는 조심스럽게 하시며 평소에 엄청 검소하신 분이 자식들을 위해서는 조금도 아끼지 않으셨었다.
이제 내가 아버지 되어 성인 된 자식을 보고 있자니 그 마음이 느껴진다.
자식들이 힘들어 하면 내가 힘든 것 보다 더 힘들고, 말이라도 같이 나누어 주고 가끔 골프라도 쳐주면 왠지 고맙고 기특하기만 하다.
나이가 들수록 내 모습속에 아버지가 느껴지는 것은 왠일일까?


한국에서부터 가지고 오신 돌침대가 너무 무겁고 잘 쓰시는 것 같이 보이지 않아“버리시지 그러냐”고 했더니 섭섭하신 얼굴로 “나 죽은 다음에 버리라” 하신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돌침대에 무슨 뻐꾸기 우는 사연이라도 있는 것인가! 왜 그러실까 했는데 내가 그러고 있다. 별로 쓰지 않는 물건이라 버려도 되는데 난 그걸 고집하며 버리지를 못하고 있다. 때묻은 정들이 그 속에 있어 버리기가 쉽지가 않은 것이다.
난 융통성이 적어서 말 듣는대로 고지식하게 알아듣는 편이다. 아버님께 식사라도 사다드린다고 하면 “괜찮다” 하서셔 정말 괜찮은 줄 알고 안 사가지고 가면 섭섭한 기색이 보였다. 백화점에 가서 자꾸 만지시면 “사 드릴까요” 여쭤보았다가 “괜찮다”고 하시면 그냥 나오곤 했다. 그 ‘No’ 가 ‘Yes’ 인걸 아는데는 꽤 시간이 걸렸었다.

이제 내 아이들이 내게 같은 질문을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아이들 힘들까봐 “괜찮다”고 하는데 정말 그냥 지나치면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은 무슨 일일까?
이제 나도 나이가 먹나보다.
‘아버지! 천국에서 여기 계신 어머니 걱정은 하시지 마십시요. 어머니는 제가 ‘불효로 효도’하고 있으니까요. 그 연세에도 자식인 나를 위해 아직도 밥을 챙겨주시려는 마음의 부담으로 건강을 지키고 계십니다. 저의 불효가 어머니의 장수의 비결이 되는 것 같아 죄송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유독 아버지 날만 되면 살아 생전에 섭섭하게 해 드린 것들만 생각난다. 나도 내 아버지의 걸으셨던 그 길을 가는 것이 마치 그림자 같는데 얼굴마저 점점 아버지가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전종준 / 변호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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