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 전국적으로 찬탄의 대상이 되었던 여학생이 있다. 많은 학생들의 부러움을 샀던 주인공은 플로리다의 17세 소녀 애슐리 애디리카. 마이애미비치 시니어 고교를 막 졸업한 소녀는 올봄 아이비리그 8개 대학 전체(브라운, 컬럼비아, 코넬, 다트머스, 하버드, 유펜, 프린스턴, 예일)에서 합격통지를 받았다. 아울러 스탠포드, 밴더빌트, 에모리 등 아이비리그 아닌 명문 7개 대학에서도 합격통지를 받았다.
어느 한 대학에만 합격해도 집안의 경사가 될 명문 중의 명문대학들에 모두 합격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가 탁월하다는 말이 된다. 올해 아이비리그 합격률(조기 지원 제외)은 유난히 낮았다. 예일 4.5%. 컬럼비아 3.7% 그리고 하버드는 3.2%로 대학 역사상 가장 낮았다. 전국의 난다 긴다 하는 영재들 100명이 지원했다가 97명이 고배를 마셨다는 말이다.
어려서부터 똑똑하기로 소문났던 애슐리는 교내 토론 팀을 이끌고 고교 학생회장을 했다. 또한 유색인종 여학생들이 뒤처지지 않도록 자신감을 심어주고 멘토를 연결해주는 단체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지역사회를 강화하는 정부 정책들을 공부하고 싶다는 소녀는 여러 대학들을 저울질 하다 하버드 행을 결정했다.
한인사회는 높은 교육열을 자랑 삼는다. 미국에 이민 온 첫째 목적이 자녀교육이라고 1세들은 말해왔다. 한국의 지옥 같은 입시경쟁을 경험했던 1세들은 미국의 여유로운 교육환경에서 자녀들을 키울 수 있다는데 감사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한국에서 조기유학 바람이 불면서 미주 한인사회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한마디로 부모들 특히 엄마들의 태도가 전투태세로 바뀌었다. 한국식 과외공부와 입시 컨설팅이 등장하고 조기교육 열풍이 불면서 한국의 입시전쟁이 그대로 옮겨왔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아이들은 학과공부며 과외활동으로 몸살이 날 지경이다.
이런 과열 분위기는 미 주류사회도 마찬가지다. 엘리트 계층을 중심으로 부모들의 교육열이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온 지 꽤 되었다. 부모가 주도하는 갖가지 프로그램들 때문에 아이들이 아이답게 뛰어놀 시간이 없다는 비판이다. 부모가 고삐를 잡고 이끌어가는 이런 구도는 아이의 삶에 아이 자신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효과가 있는 것 같지만 10대가 되고, 성인이 되면서 부작용이 나타나곤 한다.
부모들의 과도한 교육열은 불안감의 소산일 수 있다. 다른 부모들이 하는 걸 혼자 안 하자니 내 아이만 뒤처질 것 같아 불안한 것이다. 덕분에 아이들은 갖가지 활동들로 뺑뺑이를 돌고,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스스로를 발견할 기회를 잃는다. 타고난 적성과 재능을 찾으려면 아이는 아무 것에도 매이지 않는 빈 시간이 필요한데, 요즘 교육환경에서 이는 부모의 용기를 필요로 한다.
플로리다의 애슐리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는 자세히 보도되지 않았다. 엄마가 30년 전 나이지리아에서 이민 와서 싱글맘으로 딸 다섯을 키웠다는 사실만 알려졌다. 필시 가정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엄마는 억척스럽게 일했을 것이고 딸들은 각자 스스로를 챙기며 자랐을 것이다. 덕분에 애슐리는 어려서부터 자립정신이 강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강인한 엄마와 언니들을 보며 열심히 일하는 것의 가치와 교육의 중요성을 배웠다고 그는 말했다.
강한 자립심은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으로 꼽힌다. 자립심은 부모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미국에서 성공한 자녀들의 대표적 케이스로 워치스키 가족이 꼽힌다. 스탠포드 물리학과장이었던 스탠리 워치스키 박사와 교육가인 에스더 부부의 세 딸은 모두가 쟁쟁하다. 맏딸인 수잔은 유튜브 CEO, 둘째 재닛은 UC 샌프란시스코 교수, 셋째 앤은 바이오텍 회사 공동창업자이자 CEO이다. 남성중심의 극도로 경쟁적인 분야에서 딸들이 하나 같이 성공한 비결로 에스더는 자립심과 책임감을 꼽는다. “4년에 걸쳐 세 아이가 태어났는데, 도와줄 사람은 없고, 필요에 의해서 아이들을 일찍부터 독립적으로 키웠다”고 그는 말한다. 그만큼 아이들은 자유롭게 자랐고, 자유로운 환경은 아이들의 자신감을 키워주었다. 엄마가 자신들을 신뢰한다는 사실을 딸들이 느낀 덕분이라고 그는 말한다.
세계 1위 부자 자리를 넘나드는 일론 머스크 역시 어려서부터 자립정신을 배웠다. 수퍼모델 출신인 엄마, 메이 머스크는 31살에 싱글맘이 되어 삼남매를 키웠다. 열심히 일해야 아이들을 먹일 수 있었던 그는 자녀들을 절대로 어린아이 취급하지 않았다. 공부하라고 말한 적도 없고 숙제검사를 한 적도 없다. 대학 선택이며 장학금과 학자금 융자신청 역시 모두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믿고 맡겼다. 그렇게 각자 원하는 것을 찾아 스스로의 힘으로 추구해나가도록 키웠다. 그 결과가 일론 머스크이다.
부모는 사랑과 관심을 쏟으며 자녀를 잘 키울 의무가 있다. 그러나 자녀의 삶을 대신 살아줄 권리는 없다. 아이가 타고난 적성과 재능을 살리며 당당하게 자라려면 부모가 먼저 당당해야 한다. 믿음을 갖고 아이를 지켜보는 것이다. 부모의 신뢰가 자녀 성공의 밑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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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