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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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찬스

2022-06-15 (수) 이성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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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아빠 엄마 찬스라는 말이 본국 정가를 흔들고 있다. 한국에서는 고학력자나 권력있는 특권층의 자식들을 싸잡아 부모찬스라고 해서 아이들의 노력이 외면당하는 경우가 있다. 자식들이 부모의 영향을 받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아이들의 능력과 우수성을 부모와 연관시킨다면, 낳으시고 길러주시고 가르치신 모든 부모들을 채점하자는 말인가!

나의 일생 모든 것은 매일 새벽기도로 키워주신 우리 부모님 찬스였다. 그렇지만 내 자식들에게 부모 찬스를 누리는 환경을 부여하지 못해 늘 미안하고 후회스럽다.

우리 며느리가 결혼 6년 만에 임신을 했다. 그런데 임신 5개월 만에 1파운드 무게의 아들을 조산해서 내 손자는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에서 삼개월간 사투를 해야 했다. 그때 우리 가족은 물론 일가친척 등 많은 지인들까지 애기가 정상아로 자라 인큐베이터에서 나오기만을 간절히 기도드렸다. 아들 내외는 전문의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최첨단 의학을 적용해 몇 퍼센트의 가능성을 믿고, 온갖 정성과 지혜로 키워서 16세가 된 지금 177cm 큰 키의 정상아로 키웠다. 꼭 내 주먹만 했던 손자, 인큐베이터 안에 누워있던 손자를 생각하면 나는 손자가 열 살 될 때까지 아까워서 한 번도 꼭 껴안아볼 수 없었다. 지금은 그 손자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한꺼번에 제 긴 팔을 벌려 넓은 가슴에 품는다.


아들 부부가 전문직이어서 늘 바쁘지만 인터넷시대라 시 공간이 자유로워서 아들이 자기 일을 하면서 아이들의 학업을 전담하고, 친구처럼 재미있게, 교사처럼 엄하게, 때로는 애기처럼 얼리며 교육시키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 앞에서 내가 엄마라는 것이 정말 부끄러웠다. 아들은 미국 교육 시스템을 백방으로 연구하고,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해서 아이 적성에 맞게 교육을 시키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학교들이 정상수업이 불가능하게 되자 아들은 손자손녀의 대면수업을 완전 포기하고 온라인 수업으로 아이들이 고등학교 과정과 대학 과정을 마치게 해서 오히려 더 빠르게 큰 성과를 이뤄냈다. 조산아 큰 손자는 올해 16살에 4년제 대학과정을 졸업하고 콜롬비아 대학원에 입학 허가를 받아 이번 가을부터 대학원생이 되고, 14살 된 손녀는 대학 2년 과정을 끝냈다.

아들은 손자에게 비록 남보다 일찍 아주 작게 태어났지만 무엇이든 잘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강조했고, 손자는 부모의 가르침에 동의하여 자신이 세운 목표 달성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했다. 손자는 손흥민 선수 팬인데, 손흥민이 어릴 때부터 아빠가 수천 번씩 양 발 공차는 훈련을 시켜서 아빠 찬스라고도 하는데, 아무리 가르쳐도 손흥민이 실천하지 않았다면 완벽한 양 발 슈팅을 할 수 있었겠는가!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 손자는 부모 찬스가 아니라 부모들의 부주의로 조산아로 태어나 남다른 고통을 겪었으니, 가장 부모 혜택을 받지 못한 아이였다. 그 사실이 안쓰러워 어쩌다 아들이 손자를 꾸짖으면 나와 남편은 손자의 경호원같이 아들 앞에 막아선다. 그래도 이번 아버지날에는 내 아들에게 장한 아빠 상을 주고 싶다.

내 주위에는 훌륭한 부모도 너무 많고, 또 특별히 부모의 도움 없이 자신이 택한 길을 개척해서 각 분야에서 국가나 사회 봉사자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이민자 자녀들이 수없이 많다. 한국 국회 청문회를 보고, 자식 상급학교 입학을 위해 많은 서류를 위조한 범죄자 부모와, 아이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이룬 성과도 부모 찬스로 매도되는 불평등, 그 확연한 사실을 구별하지 못하는 한국 일부 국회의원들을 보며 한심해서 이 글을 쓰게 됐다. 아버지날을 맞아 자신을 낳게 해준 모든 분들은 부모찬스를 입은 것이고, 이 땅에 삶을 허락해주신 하나님 찬스이다.

<이성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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