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입장을 대변하며 ‘진보의 아이콘’이라 불리었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의 생전 캐치프레이즈는 “나는 반대합니다(I dissent)”였다. 2020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27년간의 긴 연방대법관 여정 중 많은 ‘반대의견’을 개진하고 주도했기 때문이다.
3명 이상의 판사들로 이뤄지는 항소법원이나 7명 이상의 각 주 대법원, 9명 정원의 현 연방대법원과 같은 합의체 재판부에서 과반수이상의 판사가 동의하면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법정의견문’이 되고, 채택되지 못한 의견은 반대의견(dissenting opinion), 즉 소수의견이 된다.
필자는 올해 초, 뉴욕주 아시안 변호사협회에 할당된 면접관의 자격으로 뉴욕주 대법관 후보 7명과 직접 인터뷰할 귀한 기회가 있었다. 인터뷰 주제 중 하나로 ‘판사들이 합의체의 일원으로서 굳이 반대의견을 내는 이유’에 대해 질문하였는데 특히 현직 항소법원 소속 판사 후보들의 답변이 인상 깊었다. 이들 대부분은 “상위법원의 대법관들에게 자신의 법적 해석이 옳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그 이유를 댔다.
이어서 필자가 “그렇다면 더 이상 상위법원이 없는 대법관들은 왜 그렇다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하자 “소수의견인 줄 뻔히 알지만 이번엔 묵살되더라도 그 의견이 합당하다면 언젠가 지지여론이 조성되어 미래에 다수의견이 되기를 바라는 것일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 답변을 듣고 남북전쟁 전 1857년에 있었던 ‘드레드 스콧’(Dred Scott v. Sandford) 사건이 떠올랐다. 미주리주 노예 출신이었던 드레드 스콧은 그의 주인이 노예제도가 불법인 위스콘신 준주로 그를 데리고 오자 소송을 내고 자신은 자유인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로저 테니 연방대법원장을 위시한 7명의 대법관은 다수 판결문을 통해 흑인들은 미국 시민이 아니기 때문에 소송 자격과 권리가 없다고 상고를 기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때 존 맥린 대법관은 창조자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노예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고 선언하고, “우리의 헌법과 법률 아래 태어난 드레드 스콧은 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과 달리 귀화가 필요 없는 미국 시민이며, 따라서 노예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땅(위스콘신 준주)에서는 자유인이라는 전제에서 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반대의견을 냈다.
노예제도를 두고 남북이 첨예하게 갈라져 정국이 어수선했던 당시에는 소수의견이라 공허한 외침으로 잊혔지만, 훗날 역사는 맥린 판사의 판단이 옳았음을 가려준다.
한국 헌법재판소 책임연구관 출신 허완중 교수 같은 이도 논문에서 “소수의견 제도는 다양한 헌법 해석 결과를 국민에게 알리고, 소수의견과의 대립을 통해 다수의견을 더 분명하게 부각해주며, 경쟁으로 법리 개발에 기여하며, 도저히 동의하기 어려운 다수의견에 그 이유를 표명함으로써 재판관으로서 인격과 양심을 지킬 수 있게 해준다”고 그 장점을 강조했다.
이런 순기능이 있는가 하면 법원의 분열된 모습을 노출함으로써 사법부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역기능도 무시할 수 없다. 이를 반영하듯 건국 초기와 같이 사법부의 위상이 정립되지 않았을 때나 전시 등 위기 상황에서는 반대의견이 적었다.
미국 건국 직후인 1789~1928년 사이 연방대법원이 심리한 사건 중 오직 15% 정도의 사건에서만 반대의견이 있었다. 이에 반해 2008년~2019년 사이의 연방대법원 통계에서는 매년 평균 1/3 정도만 만장일치로 결정되었을 뿐이고, 같은 기간 약 20% 정도의 사건은 5대4로 팽팽하게 결정이 났다. 현재 9명의 연방대법관은 반대의견을 내는 속내가 무엇인지 기회 되면 한번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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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락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