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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본질과 민주당 좌파의 침몰

2022-06-14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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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본질에 대해 가장 깊이 있게 생각한 사람의 하나는 토머스 홉스다. 그는 ‘리바이어던’에서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한시도 적과 야수의 공격으로부터 마음 편히 지낼 수 없기 때문에 자신과 가족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국가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인간에 대해 늑대’(homo homini lupus)며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은 불가피하고 그로 인해 인간의 삶은 ‘외롭고 가난하며 야만적이고 비참하고 짧다’(solitary, poor, brutish, nasty and short).

자연 상태가 꽃 향기 날리는 봄동산이 아니라 이빨과 발톱이 피로 물든 살육의 현장이라는 사실은 ‘동물의 왕국’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의심할 수 없다. 큰 놈은 작은 놈을 먹고 작은 놈은 빨라야 살아남는 곳이 자연이다. 온갖 향기와 형형색색의 모습으로 벌과 나비를 유혹하는 꽃들도 사실은 종족 보존을 위한 가열찬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인간 사회의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는 그에 복종하는 것이 인류 문명과 함께 국가가 탄생한 이후 인류의 역사였다. 국가 성립 이전에도 강한 집단이 약한 집단을 정복하고 수탈하는 일은 수없이 되풀이됐다.


국가는 집권자의 세력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 만이라도 이런 일을 막기 위한 수단의 하나다. 그 필수 선결 요건이 폭력의 독점이다. 합법적인 폭력을 국가 기관만이 갖게 함으로써 사적 보복을 금지하고 관리의 판결에 의해서만 형벌을 가하게 함으로써 복수가 복수를 낳는 피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 함무라비 법전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구절은 지금은 잔인하게 들릴 지 모르지만 이런 벌을 줄 수 있는 것은 국가 뿐이라는 것을 천명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사회로 나갔음을 보여준다.

고대 그리스 3대 비극작가 중 첫번째인 아이스킬로스의 3부작 ‘오레스테이아’도 그리스 사회가 사적 보복에서 공적 정의로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리스의 장군 아가멤논은 트로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지만 아내 클리템네스트라와 정부 아에기스투스에 의해 살해당한다.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는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 위해 클리템네스트라를 죽인다. 아버지 복수는 했지만 어머니를 죽이는 죄를 짓게 되자 ‘복수의 여신’ 퓨리들이 그를 추적해 오고 오레스테스는 아테네에게 도움을 청하며 아테네는 12명의 아테네 시민을 뽑아 이들에게 판결을 맡긴다. 결과는 유무죄 동수나 아테네가 무죄 쪽으로 캐스팅 보트를 던져 오레스테스는 자유의 몸이 되며 아테네는 죄에 대한 응징은 오직 법원만이 할 수 있음을 공포한다.

이런 역사와 문학 작품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국가의 일차적 존재 이유는 시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이다. 사회가 어지러울수록 ‘법과 질서’가 강한 울림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지난 주 샌프란시스코시 검사장 소환 선거에서 범죄자 처벌을 등한시한 체이서 부딘이 압도적인 표차로 소환됐다. 미국에서 가장 리버럴한 도시의 하나인 샌프란시스코 시민들도 무법 천지로 도시가 변해가는 것을 더 이상은 좌시할 수 없었나 보다.

LA도 사정은 비슷하다. 7일 열린 시장 선거에서 주민들은 정치 초년병 부동산 개발업자 릭 카루소를 1순위로 선택했다. 카루소는 캠페인 기간 내내 시민들의 최대 관심사인 범죄 퇴치와 홈리스 문제 해결에 자신이 적임자임을 강조했다. 최종 결과는 11월 본선에서 결정되겠지만 그가 예선에서 민주당의 거물 캐런 배스를 눌렀다는 것은 정치적 이변임에 틀림없다.

1968년 대선에서 사회적 혼란에 지친 미국인들이 ‘법과 질서’를 내세운 닉슨을 대통령으로 택한 것이나 범죄로 병든 뉴욕의 치안을 확보한 루디 줄리아니가 한 때 유력 대선주자로 떠올랐던 것 모두 범죄와 무질서보다 시민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이슈는 없음을 보여준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문제는 시간을 갖고 해결할 수 있지만 범죄자의 손에 내 목숨이 날아가면 회복이 불가능하다.

오랜 평온이 계속되면 사람들은 치안은 거저 유지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범죄자들이나 쾌재를 부를 ‘경찰을 없애자’는 말을 쉽게 한다. 경찰이 없는 세상은 지상낙원이 아니라 총을 든 약탈자들이 주택과 상가를 침입해 무고한 시민을 죽이고 재산을 빼앗는 자연 상태로의 회귀다.

다행히 범죄를 퇴치하는 법은 알려져 있다. ‘깨어진 유리창 이론’이 말해 주듯 유리창 파손과 같은 작은 범죄부터 엄격히 단속하면 중범죄는 줄어든다. 이런 방법으로 한 때 범죄가 창궐하던 뉴욕은 안전한 도시가 됐다. 인간은 항상 잘못을 저지른 후에야 깨닫는다. 지금이라도 잘못된 정책을 바꾸면 미국의 대도시들은 다시 안전해질 수 있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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