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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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꽃

2022-06-13 (월) 김명수 버클리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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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방약 받으러 온 고객이 꽃다발을 들고 와 나에게 건네준다. 라일락의 독특하고 향긋한 향내가 물씬 풍긴다. 그녀는 약을 받아가며 가끔씩 뒷마당에서 꽃이며 과일 나무에서 따온 과일을 들고 왔다. 중학교 교사였고 남편은 뉴왁시에서 고위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녀가 아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할 때마다 얼마나 아들을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아들 외에도 그 위로 딸 두명이 더 있다고 했다. 정기적으로 약을 받으러 왔기에 마치 가족처럼 이야기하며 지내고 있었다. 한동안 보이지 않아 여행을 갔구나 했다. 얼마 후 딸에게서 온 전화를 받으니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마도 교통사고가 나서 사망했나 보다 생각했다.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안타깝고 아파왔다.

하루는 딸이 처방전을 갖고 약을 타러 왔다. “엄마가 어디서 교통사고가 났어요?”라고 물어보니 딸의 눈시울에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게 아니에요. 남동생이 쏜 총으로 돌아가셨어요.”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어쩌다가 그런 일이? 동생이 총 쏘기 전에 엄마와 말다툼을 크게 했나요?” “전혀 아니에요. 아래층 거실에서 엄마 혼자 조용히 TV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동생이 총을 들고 와 엄마를 향해 쏘았어요.” 나는 그 말에 충격을 받았다. 큰누나를 향해서도 쏘았다고 한다. 목 근처에 쏜 총알이 빗나가 죽는 건 면했지만 그 상처로 병원에 입원해있다고 한다. 자기는 이층으로 도망가 911에 전화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딸만 낳으면 빵점이고 아들 둘 낳으면 백점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딸 둘 낳고 빵점을 받아도 그 이후 아들을 낳으면 이백점이라던데 당신이 그렇군요” 하며 그녀에게 농담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녀의 고향인 포르투갈도 아들을 더 선호한다고, 아들을 낳아 너무 기뻤다고 했다. 그런데 그 아들에게 총을 맞고 죽다니…

“왜 엄마에게 총을 쏘았느냐?”는 경찰 심문에 아들은 “총을 쏘라는 명령이 갑자기 귀에 들렸다”고 한다. 경찰이 아들의 방을 조사하니 사이비 종교의 책들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불온서적을 읽어서인가? 아니면 악한 영이 아들을 조정하고 있었던 것일까? 엄마는 믿음이 깊은 가톨릭 신자였는데. 그녀가 갖고 온 라일락꽃이 시들어 가도 향기가 좋아 간직하고 있었다. 그날따라 말라버린 라일락꽃에서 은은히 풍기는 향기가 콧속으로 들어와 마음을 울리고 있었다.

<김명수 버클리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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