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열차칸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험상궂게 생긴 사내 서너 명이 여자 승객에게 다가가서 핸드백을 가로챈다. 그 중 한 녀석은 핸드백을 열고 뒤적이더니 돈을 뺀다. 여자 승객은 소리 소리 지르며 백을 돌려달라고 악을 쓰지만 연약한 여자는 핸드백을 빼앗긴 채 두 녀석의 억센 힘에 밀쳐져저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열차칸 사람들은 이런 불한당의 행패를 보고 있으면서도 강건너 불 보듯 누구 하나 선 듯 나서서 말리는 사람이 없다. 벌건 대낮에 열차간에서 일어난 일이다.
잠시후 뜻밖에 열차칸의 상황이 바뀌었다. 열 서너살 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백치기한 사내들에게 달려들었다. 그 소년은 이 광경을 보고 참다못해 용기를 내어 선뜻 나선 것이다. 어른들의 태도가 너무 한심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비록 어리고 힘은 없지만 달려들어 말려보자는 용기를 낸 것이다. 그 소년이 다가가서 뜯어말리자 그들은 “어디서 조그만 게 굴러 와서 참견이냐?”고 사정없이 소년을 발길로 걷어차고 주먹으로 때렸다.
소년이 바닥에 엎어지고 그의 코에서 피가 주르르 흘러내렸다. 이 광경을 지켜본 한 여인이 신고있던 구두를 벗어들고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너희들이 인간이냐? 이 짐승만도 못한 놈들아, 어디 한 번 해보자.”
지금까지 옆에서 지켜만 보고 있던 사람들이 그제서야 비로서 우루루 한꺼번에 몰려가서 합세했다.
사람들은 제각기 구두를 벗어들고, 어떤 사람은 허리 벨트를 풀어들고 너나 할 것없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결과는 뻔한 일이었다. 불량배들은 당연히 승객들에게 의해 제압당하고 허리 벨트로 꽁꽁 묶여 경찰에 인계되었다. 이렇게 우리가 사는 세상 곳곳에 아직까지도 양심과 용기가 살아 숨쉬고 있다. 양심과 용기가 상실된 사회나 국가는 더 이상의 비전은 없다.
지금 우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을 신문, 방송으로 소식을 보고 듣는다. 마치 열차간에서 있었던 불량배들의 사건을 보는 것같이 느끼면서 말이다.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면서 해외에 나와있는 자국민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속속이 귀국하고 있다. 자진해서 전쟁터에 들어가 싸우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힘없고 나약한 나라가 두들겨 맞고 있는데 주변 나라들은 뒷짐 지고 강 건너 불보듯 하는, 양심과 용기 없는 태도가 너무 실망스럽고 화가 난다.
만에 하나 이와 같은 일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난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진 귀국하여 총을 들겠는가 자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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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송/뉴욕 용커스 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