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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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한 ‘조용한 내조’ 보도

2022-06-0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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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지난 한달 사이 그의 부인 김건희 여사에 대한 비슷한 패턴의 보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특정 언론이나 팬 카페를 통해 대통령 부인의 옷차림과 액세서리 사진이 공개되면 다른 언론들도 질세라 앞 다퉈 이를 내보낸다. 대통령 부인이 걸친 제품의 브랜드와 가격 등을 소개하면서 “김 여사 덕분에 그것들이 완판되었다”고 보도한다. 마치 연예지에 실리는 셀럽들의 공항 패션 기사를 연상시킨다.

사진이 몇 장 뜨면 기사는 수백 개가 쏟아져 나온다. ‘완판녀 등극’이니 ‘검소하다’는 등의 제목은 기본이고 “별로 비싸지 않은 제품들인데도 그녀가 착용하니 태가 한껏 나온다”는 팬 카페 관계자의 말이 인용되기도 한다. 독자 제공 혹은 팬 카페 캡처 등 출처불명의 사진들이 대통령 부인에 대한 이미지 메이킹에 활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게 무슨 기사냐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다수 언론의 태도는 불변이다. 특히 가장 큰 보수매체는 이런 보도에 가장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다.

이와 함께 김 여사의 일거수일투족을 다루는 보도에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수식어는 ‘조용한 내조’이다. 가십성 이야기들마저도 ‘조용한 내조’로 포장한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자리에서 부인의 조언에 따라 굽이 있는 구두를 신었다며 이것을 ‘구두 내조’라고 칭했다. 언론들이 이것을 그대로 받아썼음은 물론이다.


대통령 취임식 날 흰색 원피스를 입은 것을 두고는 “흰색은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 색깔”이라는 설명과 함께 “내조에 전념하겠다는 뜻”이라는 기발한 해석을 달기도 했다. 모든 것을 ‘조용한 내조’라는 프레임에 끼워 맞추려는 의도가 읽힌다. 아예 ‘이주의 김건희’라는 코너를 만든 언론도 있다.

남편의 대통령 당선으로 김건희 여사는 대통령 부인이 됐지만 그녀는 여전히 주가조작 연루 혐의 등 여러 의혹을 받고 있다. 대통령 부인이 된 만큼 현실적으로는 어떤 조치가 취해질지 충분히 예견할 수 있을지라도 아직 이런 의혹들에 대한 조사와 수사가 완전 종결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난무하는 이미지 메이킹 보도들 속에서 언론들이 공익 관점에서 소홀해서는 안 될 의혹 관련 보도는 아예 자취를 감춰 버렸다.

20대 대선 기간 중 당시 윤석열 국민의 힘 후보는 부인을 둘러싼 의혹들 때문에 곤혹스러워 했다. 이른바 ‘배우자 리스크’로 윤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이자 배우자는 사과기자 회견 후 두문불출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의 부인이 선거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한 듯 당시 윤 후보는 “당선되더라도 영부인이라는 말은 쓰지 말자”며 대통령 부인을 보좌하는 청와대 제2부속실도 없애겠다고 밝혔다. 부인을 둘러싼 의혹들의 파장을 최소화해 보려는 다급한 계산이 읽혔다.

하지만 대통령 당선으로 상황이 180도 달라지자 생각도 달라진 것일까. 한껏 몸을 낮추는듯하던 당초 태도와 달리 대통령 부인을 보좌할 조직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목소리가 대통령 주변에서 슬슬 새어나오고 있다. 대통령 취임 한 달도 채 되지 않아서이다. ‘조용한 내조’가 시끌벅적하게 공개되고 있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조용한 내조’는 말 그대로 조용히 이뤄져야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가뜩이나 윤 대통령과 부인 사이의 역학관계와 관련해 억측들이 나도는 마당에 요란한 ‘조용한 내조’ 보도는 이런 억측을 한층 더 키울 수 있다. 그런 만큼 언론에 무분별하게 노출되지 않도록 대통령 부인 스스로가 자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 무엇이 보도 가치가 있는지는 언론의 독자적 판단의 영역에 속한다지만 공적 이슈들은 외면한 채 사적 영역의 가십성 기사에만 몰두하는 언론의 태도 역시 자신의 존재 이유를 훼손하는 퇴행적 행태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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