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제2의 핵무기 시대

2022-06-08 (수)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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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핵무기의 위험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다. 그저 2차 대전을 종식시키고 우리나라에 해방을 가져다준(일제를 심판한!) 역사적 재난, 가공할 파괴력 때문에 다시는 사용되지 않을 인류 최악의 무기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2022년, 핵 위협에 대한 우려가 지구촌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지난 1일 뉴욕타임스는 “러시아의 핵사용 위협과 중국 및 북한의 핵무장 강화로 세계질서가 극도로 불안정해졌다”고 보도했다. 바로 전날 5월31일 조 바이든 대통령은 뉴욕타임스 특별 기고를 통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그 어떤 규모라도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세계는 결단코 용인하지 않을 것이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뜻대로 안 되자 핵이라는 초강경카드를 꺼내든 푸틴, 올해만 수십발의 미사일을 쐈고 곧 7차 핵실험을 준비하는 북한, 2030년까지 1,000개의 핵무기를 제조하려는 중국, 핵탄두 제조에 거의 근접한 이란…. 전문가들은 지금이 냉전 때보다도 불안한 ‘제2의 핵무기 시대‘라고 단언한다.


‘총 균 쇠’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문화인류학자 재레드 다이어몬드는 2019년 저서 ‘대변동’에서 향후 세계를 위협할 위기 4가지를 제시했는데 그 첫째가 핵무기였다.(둘째 기후변화, 셋째 세계적 자원고갈, 넷째 세계적 차원의 불평등) 그리고 실제 핵폭탄이 터질 파국의 원인을 다시 4개 시나리오로 분석했는데 그중 첫 번째가 두 핵보유국 간의 공격이다. 말하자면 미국과 러시아, 중국과 미국, 북한과 미국 간의 핵 공격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공격은 다함께 궤멸하여 승산이 없고 무모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어느 나라도 시도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이를 미래 핵 위기의 첫 번째 시나리오로 꼽은 이유에 대해 다이어몬드는 “최근에는 무모하고 비이성적인 지도자가 적잖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과 북한의 김정은을 필두로 독일과 일본, 미국과 러시아에도 유사한 지도자가 있다.”고 썼다.(당시 미국 지도자는 도널드 트럼프) 그리고 실제로 현재의 위기를 만든 사람이 블라디미르 푸틴이니, 3년 전에 나온 책인데도 현재의 상황을 정확히 예견한 셈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쓴 회고록 ‘약속의 땅’에서 푸틴이 2008년 조지아를 침공한 일에 대해 “우리가 보기에 이는 푸틴이 점점 대담해지고 사나워지고 타국의 주권을 존중하지 않고 국제법을 더 공공연히 무시한다는 신호였다. 여러 면에서 그는 그러고도 무사했다. 부시행정부는 외교 접촉을 중단하는 조치 외에는 러시아의 도발을 응징하지 않았으며 다른 나라들도 어깨만 으쓱할 뿐 모르는 체했기에, 이제 와서 러시아를 고립시키려 해봐야 실패할 게 뻔했다.”고 썼다. 또한 푸틴은 “가장 많은 핵을 보유했지만 경제수준은 개발도상국과 비슷한 수준인 러시아의 실상에 아랑곳없이 초강대국에 대한 집착을 갖고 있다. 그 괴리에 대한 분노는 대부분 미국을 향했다.”고 평가했다.

한때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로 여겨졌던 ‘차르 푸틴’은 올해초 우크라이나에서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킨 후 ‘21세기의 히틀러’로 불리며 잔악한 침략자, 학살자, 전범으로 비난받고 있다. 그의 정신상태에 대한 의심이 꼬리를 무는 가운데 오랫동안 절대권력을 휘두르면서 자기도취, 과대망상, 판단력 저하로 인한 ‘오만증후군’에 빠졌다는 설도 나왔다. 커트 볼커 전 나토 주재 미국대사는 지난 3월 “푸틴이 점점 미쳐가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의 원자력 발전소와 연구소를 공격한데 이어 더러운 폭탄을 터뜨리거나 진짜로 핵을 쓸지도 모른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21세기 지구촌에 핵폭탄이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핵무기는 미국이 1945년 개발했고 그해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되어 최소 20만명의 사상자를 낸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때 이후 강대국들은 앞 다퉈 핵을 개발, 지금 전 세계가 보유한 핵무기는 무려 1만5,000개가 넘는다. 러시아(6,375개)와 미국(5,800개)이 전체의 93%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중국(320), 프랑스(290), 영국(215), 파키스탄(160), 인도(150), 이스라엘(90), 북한(20~60) 등 9개국이 핵을 보유하고 있다.(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2020년 보고서)

현대 핵무기의 파괴력은 일본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수천 배가 넘는다. 이 중 하나라도 고의로 혹은 실수로(이 시나리오도 굉장히 많다) 터질 경우 인류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겪게 된다. 만일 두 나라 간에 핵무기를 쏘아대는 전쟁이 벌어진다면 수억명이 단번에 사망하는 것은 물론 전 세계가 겪는 후유증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핵폭발로 인한 연기와 그을음과 먼지가 여러 주 동안 햇빛을 차단하여 기온이 급강하하는 ‘핵겨울’이 찾아오고, 그 때문에 광합성이 멈춰 많은 동식물이 말살되면서 세계적인 흉작으로 인류는 굶주림뿐 아니라 추위, 질병, 방사능으로 사망하게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한 미치광이의 손짓 하나가 이런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에 허탈과 분노와 공포가 밀려온다. 부디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고 인류가 이성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두손 모아 빈다.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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