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90년대다. 1960년대생으로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30대는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며 한국 사회의 주요 세력으로 부상했다. 이들은 1997년 극적으로 이회창을 꺾은 김대중이 ‘젊은 피 수혈론’을 내세우며 제도권 정치로 끌어들이면서 본격적으로 한국 정치의 전면에 서게 된다. 고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전대협(전국 대학생 대표자 협의회) 1기 의장인 이인영, 연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전대협 1기 부의장인 우상호, 역시 연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송영길, 한양대 총학생회장 출신이자 전대협 3기 의장인 임종석이 모두 이 때 영입됐다.
노무현도 ‘젊은 피 수혈’을 계속했다. 노무현 탄핵 역풍으로 2004년 소위 ‘탄돌이’들이 대거 국회에 입성하는데 경희대 수원 캠퍼스 총학생회장 출신의 김태년, 연대 정외과 출신으로 노동운동을 한 김현미, 우상호, 서울대 철학과 출신으로 유시민과 함께 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 사건으로 징역형을 산 윤호중, 고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전대협 결성을 주도한 이인영, 동국대 총학생회장 출신 최재성이 그들이다.
2008년과 2012년에도 성대 출신으로 노동 운동을 한 유은혜, 고대 법대 출신으로 민변의 대표 변호사였던 전해철, 성대 총학생회 부회장 출신으로 노동 운동을 한 박완주, 경희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전대협 권한 대행을 맡았던 박홍근 등이 금배지를 달았다.
90년대 30대였던 이들은 세월이 가면서 이름도 386에서 486, 586으로 바뀌었지만 그 영향력은 날로 커졌다.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연전연승 하면서 이들은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의 핵심 세력으로 자리잡았다.
송영길은 민주당 대표, 임종석은 대통령 비서실장, 김태년은 민주당 원내 대표, 김현미는 국토교통부 장관, 우상호는 민주당 원내 대표, 윤호중은 민주당 원내 대표와 비상대책 위원장, 이인영은 통일부 장관, 최재성은 정무 수석, 유은혜는 교육부 장관, 전해철은 행정안전부 장관, 박홍근은 민주당 원내 대표를 맡았거나 맡고 있다.
군부 독재 시절 이들이 목숨 걸고 민주화를 위해 싸운 공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은 태생부터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이들은 전두환 체제를 분쇄하기 위해 소위 ‘의식화 사업’을 벌인다며 ‘전환시대의 논리’, ‘역사란 무엇인가’,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 과 같은 이념 서적을 학생들에게 주입식으로 교육하고 군기를 잡는다며 군대 못지 않은 폭력을 일삼는 소위 ‘운동권 문화’를 만들었다. 이들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친일파가 미군정과 손을 잡고 만든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며 아직도 매판 자본이 판치는 미 제국주의의 식민지고 일제와 무장 투쟁을 벌인 김일성이 세운 북한이야말로 정통성이 있는 나라였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1년 소련이 붕괴한데다 한국의 눈부신 경제 성장을 더 이상 의심할 수 없게 되면서 일부 운동권 인사가 소위 ‘뉴라이트’로 전향했지만 대다수 이들의 의식 속에는 우리야말로 민주화의 일등공신이라는 생각이 남아 있다. 2021년 설훈이 민주화 유공자 본인과 그 후손들이 대대로 교육, 취업, 의료, 대출에 특혜를 받을 수 있도록 한 법안을 발의한 것은 이들의 의식 구조를 보여준다.
장장 20년간 계속된 운동권 권력의 몰락은 남이 아니라 스스로에 의해 시작됐다. 2018년 충남 도지사였던 안희정이 비서를 성폭행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에 처해졌다. 2020년에는 운동권의 대부로 불리는 박원순 서울 시장이 비서를 성추행 혐의로 수사 선상에 오르자 자살했다. 운동권 출신으로 3선 의원인 박완주도 성추행 혐의로 제명됐다.
잇단 성 스캔들로 ‘더듬어 민주당’이란 오명을 얻은 데 이어 운동권 출신 조국 일가가 입으로는 공정과 정의를 말하면서 실제로는 표창장을 위조해 가며 딸을 명문대에 보낸 사실이 밝혀지자 민주당은 ‘내로남불’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이런 부정적 이미지에다 부동산 정책 실패까지 겹치면서 ‘100년 정당’을 꿈꾸던 민주당은 5년만에 정권을 내줬음에도 대통령 퇴임을 며칠 남겨두고 ‘검수완박법’을 온갖 꼼수를 동원해 통과시켰다. 그 결과가 지난 1일 치러진 지방 선거 결과다. 4년전 경북과 대구를 빼놓고 완승했던 민주당은 이번에는 호남과 제주, 경기를 빼놓고는 전패했다. 운동권 출신으로 충북 도지사 후보로 나왔던 노영민과 강원 도지사 후보로 나왔던 이광재는 참패하고 민주당 중 가장 운동권과 거리가 먼 김동연이 0.15% 차이로 경기도에서 이겼다는 것은 국민들의 운동권에 대한 평가를 보여준다.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은 ‘데모만 잘 했지 아는 게 없다’는 비판처럼 지난 20년간 정치판에서 제대로 된 업적을 남긴 것이 없다. 어차피 장강의 뒷물은 앞물을 밀어내기 마련이다. 훗날 역사는 올 대선에 이은 지선 참패를 민주당 운동권 몰락의 분수령으로 기록할 것이다.
<
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