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동안 한국에 다녀왔다. 봄철의 한국은 깨끗하고 평온했다. 코비드 기세가 여전한 만큼 마스크는 거리의 한 풍경을 이루었다. ‘참 말 잘 듣는 백성’이라는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마스크 안 쓴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여행을 마치고 LA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미국에 온 실감이 났다. 입국심사를 받기위한 줄이 길어서 한 시간 이상 지체했는데, 그 밀폐된 공간에서 마스크 안 쓴 사람이 어림잡아 40%는 되었다. 마스크 착용조차 공중보건 이슈로 합의되지 못하고 정쟁에 이용되는 나라, 미국이다.
그리고는 미국에 돌아온 것이 진짜 실감난 것은 지난 2주치의 신문을 훑어보면서였다. 총기난사 사건이 줄을 이었다. 5월 14일 뉴욕, 버팔로의 흑인지역 수퍼마켓 총기난사 사건, 15일 남가주 라구나우즈의 대만교회 총격사건, 24일 텍사스의 히스패닉 타운 유밸디의 초등학교 무차별 총격 참극 등. 이어 메모리얼 데이 연휴 전국에서 500여건의 총격사건이 발생해 150여명이 또 목숨을 잃었다.
한국 방문 중 대부분 접한 뉴스들이었지만 한꺼번에 몰아서보니 충격의 정도가 달랐다. 전쟁터도 아닌 곳에서 이렇게 많은 국민들이 무참하게 죽어 가는데도 속수무책인 정부를 정부라고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학교에 갔다가 죽는 나라, 아침에 학교 앞에 내려준 아이가 오후에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은 병들었다.
그리고는 지난 1일 오클라호마, 털사의 병원에서 또 다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 용의자 포함 5명이 사망했다. 이로써 올해 들어 대량살상(희생자 4명 이상) 사건만 최소 233건 발생했다는 것이 총기폭력기록보관(GVA)의 집계이다. 6월 1일은 올해의 152번째 날, 매일 1~2건의 총기난사사건이 발생했다는 말이 된다. 한편 매스컴에 보도되는 총기난사 사건은 전체 총격사건의 빙산의 일각. 불법총기 반대 시장단(Mayors Against Illegal Guns)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매일 평균 110명이 총에 맞아 죽는다(자살/타살).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총으로 죽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우선 총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미국 민간인 소유 총기는 근 4억 정으로 단연 세계 1위이다. 아울러 총기규제가 너무 약하다. 음주보다 쉬운 것이 총기구입이다. 법정 음주연령은 21살인 반면 총기구입 연령은 18살이다. 게다가 군경이나 필요로 할 돌격용 반자동소총을 민간인이 구입할 수 있다. 18살짜리가 반자동소총을 버젓이 사들고 참극을 벌인 것이 최근의 사건들이다. 전국총기협회(NRA)의 로비, 그들의 영향력에 겁먹은 공화당 정치인들 때문에 연방의회의 총기규제 시도는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
총에 관한한 미국에서 상식은 작동되지 않는다. 민간인들에게 돌격용 총기구입을 허용하면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미국사회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집단이 있다. 분노와 좌절을 불특정 다수에 대한 공격으로 해소하려드는 외톨이 젊은 남성들이다.
버팔로 수퍼마켓 사건과 텍사스 초등학교 사건의 용의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18살의 외톨이 남성이라는 점이다. 친구가 거의 없었다. 인간은 육체적 사회적 접촉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다. 가족이나 연인 친구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유지할 때 건강한 삶이 가능하다. 어디에도 마음 붙일 수 없는 고립감은 종종 정신건강을 해친다. 이런 허약한 정신을 파고드는 것이 각종 음모론과 왜곡된 정보들.
백인우월주의자인 버팔로 총격범은 흑인들을 죽이기 위해 200마일을 달려갔다. 그는 유색인종이 미국에서 백인들을 몰아내려 한다는 거대한 대체론에 심취했다. 3시간 30분 운전거리를 두 번이나 답사하면서 범행을 계획하고, 온라인에 마니페스토를 올리며, 헬멧에 부착한 카메라로 대량살육의 장면을 생중계할 정도로 그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그의 범행은 2019년 8월 텍사스, 엘파소의 히스패닉 동네 월마트에서 23명을 사살한 21살짜리 백인남성의 범행과 판박이다. 당시 범인은 “멕시칸을 없애겠다”며 집에서부터 650마일을 달려가 참극을 벌였다.
텍사스 유밸디 초등학교 참사는 10년 전 코네티컷의 샌디훅 초등학교 사건과 닮은꼴이다. 당시 정신질환을 앓던 20세의 백인청년은 어머니를 총격살해한 후 초등학교로 달려가 총기를 난사, 어린아이들 20명과 교직원 6명을 죽게 했다. 이번 히스패닉 청년은 외할머니에게 총격을 가한 후 인근 초등학교로 달려가 어린이 19명과 교사 2명을 사살했다. 병든 젊은이들이다.
병든 젊은이들을 만들어내는 사회는 병든 사회이다. 무엇이 미국을 병들게 하는가. 첫째는 ‘우리’와 ‘그들’을 갈라놓는 분열의식이다. 트럼프 집권 이후 유색인종/이민자 그룹에 대한 백인들의 배타심이 깊어졌다. 트럼프가 코비드를 ‘중국 바이러스’로 부른 이후 아시안 증오범죄가 기승을 부렸다. 둘째는 깨어진 가정들이다.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 자라서 괴물이 되고 있다. 셋째는 너무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총기. 인종혐오도 사회적 적대감도 총기가 더해지면서 대형 참극으로 화하고 있다.
광기어린 총질이 언제까지 계속 될 것인가. 미국의 앞날이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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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