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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두들, 데니스 황, 스테이시 박 밀번

2022-05-25 (수)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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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검색 홈페이지를 열면 때에 따라 구글(google) 로고가 그림으로 변형된 일러스트레이션이 뜬다. 보통은 검색하기 바빠서 무시하고 지나가지만 가끔 눈에 띄는 디자인이나 호기심 이는 그림을 마주치면 클릭해 들어가서 관련 내용을 살펴보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검색엔진이 던져주는 그 날의 메시지 ‘구글 두들’(google doodle) 이야기다. 여기에는 해당 날짜에 기념할만한 인물, 장소, 이벤트, 국경일 등을 조명하는 내용이 담긴다. 역사적으로 널리 알려진 주제는 물론이고, 덜 알려졌으나 중요한 인물과 사건들을 다양하게 발굴해 소개한다는 점에서 꽤 인기가 높다.

단순하고 익살스런 그림의 구글 두들은 장난삼아 시작됐다고 한다. 1998년 구글을 창립한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네바다주에서 열린 ‘버닝맨’ 축제에 참석하러 떠나면서 ‘자리 비움’(out of office) 표시로 구글 글자 위에 ‘버닝맨’ 로고를 살짝 올려놓은 것이 시작이었다. ‘버닝맨’은 자유영혼을 꿈꾸는 아티스트들이 매년 수만명씩 사막에 모여 일주일간 공동체생활을 하며 창작 욕구를 분출하는 페스티벌로, 특히 실리콘 밸리의 크리에이터들이 열광하는 이벤트로 유명하다.


그때의 장난이 재미있었던지 페이지와 브린은 2년 후 두들 아이디어를 개발하기 위해 한 사원에게 기념일 로고 디자인을 맡긴다. 그 최초의 두들러는 한인 2세 데니스 황, 당시 스탠포드 대학에서 미술과 컴퓨터를 전공하며 구글에서 인턴으로 일하던 그래픽 아티스트였다.

그가 처음 만든 두들 디자인은 2000년 7월14일 ‘바스티유 데이’(프랑스 혁명기념일) 로고였는데, 그 홈페이지 디자인이 크게 히트하면서 그는 정식 구글 로고 디자이너가 되었다. 이후 2009년까지 황씨는 설날, 추석, 광복절 등 한국의 명절을 포함해 세계 각국의 기념일을 위한 수많은 로고를 창조하며 두들 팀을 이끌었다.

2010년 구글의 사내 벤처기업인 나이앤틱으로 자리를 옮긴 황씨는 여기서 또 한번 대박 신화를 씀으로써 언론에 크게 소개되었다. 2016년 젊은이들 사이에 세계적 열풍을 일으킨 ‘포키몬 고’의 게임설계를 지휘한 총괄미술감독이 바로 그였기 때문. 현재는 나이앤틱에서 비주얼 인터렉션의 아트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19일 구글 홈페이지를 열었을 때 동글납작한 얼굴에 안경 쓴 여성의 그림이 올라왔다. 아시안 같은 느낌도 있고 무궁화 꽃이 함께 그려져 있기에 클릭해보니 스테이시 박 밀번(Stacey Park Milbern, 1987-2020)이라는 한국계 여성이 그 날의 주인공이었다.

한번도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코리안 아메리칸 여성이 하루 수십억회 클릭되는 구글 두들에 등장하다니, 놀랍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자료를 찾아보았다. 한글로 된 자료는 하나도 없고 영문 자료만 줄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한국사회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임이 분명했다. 위키피디아에도 그의 프로필이 있고, 많은 미디어와 인터뷰했으며, 심지어 뉴욕타임스는 2년전 그의 부고기사를 사진과 동영상까지 곁들여 상당히 길고 자세하고 소개했는데도 말이다.

선천성 근위축증으로 33년의 짧은 생을 살고 간 스테이시 박 밀번은 장애인의 권리와 정의를 위해 투쟁했던 ‘운동가’였다. 주한미군 백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16세 때부터 장애인의 공정한 대우와 권익옹호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장애인과 청소년을 위한 여러 네트웍과 위원회를 조직했으며, 2007년 10월을 ‘장애인 역사인식의 달’로 제정하는 법안 통과를 주도했고, 고등학교 교과과정에 장애인 역사를 포함시키는 일에도 성공을 거두었다.

메소디스트 대학을 졸업한 그는 24세 때 북가주 베이 지역으로 이주해 자신의 활동을 전국적으로 확장해갔다. 코리안 아메리칸, 퀴어(queer), 장애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밝히고 활동해온 그는 장애인사회 내에서도 소외된 성소수자들(LGBTQ)과 유색인들을 위해 헌신했고, 특히 장애인에게 불공정한 의료지원과 의료계의 뿌리 깊은 편견을 호소하고 고발했다. 2014년에는 오바마 대통령의 지적장애인 위원회에 임명돼 2년간 오바마 행정부에 자문을 제공했고, 2015년 오클랜드의 밀스 칼리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뛰어난 리더십으로 수많은 단체와 운동을 조직했고, 시를 짓고 글을 쓰고 연설하면서 불가능해 보이는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작은 거인, 유머와 미소가 가득했던 장애인들의 친구이자 존경하는 투사로 기억되는 스테이시 박 밀번은 2020년 5월19일 사망했다. 신장암이 빠르게 퍼져가고 있었으나 팬데믹 사태로 병원시스템이 마비돼 수술이 계속 연기되었고 결국 수술 합병증으로 숨을 거두었다. 5월19일은 그녀의 생일이자 기일이다.

이렇게 대단한 인물을 우리는 왜 모르고 있었을까? 혹시 장애인이라는 부담스런 이슈가 우리의 눈과 귀를 가렸을까? 얼마 전 한국 지하철에서 일어났던 장애인단체의 시위와 이를 비난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간의 논란까지 생각나면서 마음이 씁쓸해진다. 이제라도 스테이시 박 밀번의 유산이 한인사회에 널리 알려지기를 바란다.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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