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9월 한 정치인의 출사표에 미국 언론의 주목이 쏟아졌다. 그 정치인은 다름 아닌 리처드 닉슨이었다.
캘리포니아 주 연방 하원의원, 상원의원을 거쳐 부통령을 지냈다. 그리고 바로 전 해 1960년 11월 대통령선거에서 존 F. 케네디에게 아주 근소한 표차이로 패배했다.
그 닉슨이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선거 캠페인 초기 전국구 정치인 닉슨의 지지도는 상대인 민주당 현역 주지사 팻 브라운을 압도했다.
‘차기(1964년) 대선에 다시 나오기 위해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출마했을 뿐’이라는 브라운의 주장이 먹혀서인가. 닉슨은 선거결과 5% 차이로 대패했다.
그러자 미 언론들은 일제히 닉슨의 정치적 조사(弔辭)를 썼고 본인도 스스로 정치적 생명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정치재개를 권유해준 사람은 프랑스의 샤를 드골이다. 닉슨은 야인으로 돌아가 관광차 프랑스를 방문했다. 그런 그를 당시 프랑스대통령이던 드골은 정중히 환대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했다. “해외정책을 잘 모르고서는 미국의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 이런 면에서 귀하같이 대권후보 자격이 있는 미국의 정치인은 몇 명 안 된다.”
그리고 수년 후 닉슨은 정치를 재개, 1968년 대선에서 승리, 백악관 입성과 함께 화려한 핑퐁 외교를 펼친다.
대선 후보였던 정치인이 지역선거에 뛰어든다. 한국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지 두 달도 안 돼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뛰어든 이재명 케이스가 그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상임고문을 6·1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로 전략공천하고 아울러 지방선거 총괄선거대책위원장으로 추대한 것이다.
이재명은 이 같은 정치 행보를 통해 과연 재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네거티브’가 그 답으로 보인다.
6·1 지방선거의 전체적 흐름이 우선 그렇다. 서울은 말할 것도 없다. 인천, 경기 지역에서도 윤석열바람이 거세다. 충청권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은 고전이다.
이른바 ‘이재명 투입 효과’는 미미하다 못해 오히려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회의론마저 일고 있다. 인천 계양을 선거구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심상치 않다.
명색이 대선 후보였고 더불어민주당의 사실상 총수 격이다. 그런 이재명이 무명에 가까운 윤형선 국민의힘 후보에 밀리는 여론조사 결과가 잇달아 나오고 있는 것.
선거의 총체적책임은 총괄선대위원장에게 돌아간다. 때문에 지방선거에 지면 그 자체만으로도 정치적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다가 보권선거에서도 패배하면 이는 정치 생명에 치명적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재명의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는 ‘방탄용’외에는 아무런 정치적 명분을 찾기 어렵다.
대선에서 패배한지 두 달 겨우 남짓 이라는 타이밍에 선거판에 나선 것부터가 그렇다. 더 더욱이 민주당 아성으로 안전지대 중 안전지대인 인천 계양을에 전략공천을 받았다는 점에서도.
그래서 한 번 가정을 해본다. 6.1 선거에서 더불어 민주당이 참패했다.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의 낙마소리와 함께. 그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까.
‘감옥에 갈 것 같다’고 했던가. 이재명 후보 본인이 대선 유세 중 한 그 말이 현실이 되고 더나가 민주당 분당사태까지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 지방선거 패배 시 양산으로 내려간 문재인 복귀 가능성이 야권에서 벌써부터 점쳐지고 있어서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