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사이좋은 부부의 비결

2022-05-20 (금) 권정희 논설위원
크게 작게
“사람은 바뀐다”며 행복해하는 후배가 있다. 100% 달라진 모습으로 그를 즐겁게 만드는 사람은 그의 남편이다. 60대 초반인 후배는 남편의 느긋한 성격을 늘 답답해했다. 행동이 너무 느려서 보고 있으려면 “속이 터진다”고 했었다. 그러던 남편이 두어해 전부터 활기차고 빠릿빠릿하게 변하더니 딴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남편의 ‘변신’이 특히 빛을 발한 것은 팬데믹 때였다. 재택근무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그의 남편은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기 시작했다. 낡고 고장 난 것들을 일일이 찾아내 고치고 집안을 반짝반짝하게 청소하며 세탁과 장보기를 도맡아 했다. 어느 날은 위층에서 일(재택근무)하다 아래층이 시끄러워 내려가 보니 남편이 냉장고 싱크대 스토브 등 스테인리스 주방설비들을 대청소하고 있더라고 그는 남편자랑을 했다.

남편이 수고하는데, 그래서 고마운데, 아내인 그가 두 손 놓고 있을 리는 없다. 음식솜씨 좋은 그가 끼니때마다 맛있는 밥상을 차려내니 남편은 대만족이다. 부부가 집안에서 각자 잘 하는 일들을 스스로 챙겨 기쁘게 하니 부부는 싸울 일이 없다. 결혼생활 30여년 중 그 부부가 요즘처럼 사이좋은 적은 없었을 것 같다.


남편의 가사분담이 아내의 행복감을 좌우한다고 하면 많은 남성들은 뜨악해 할 것이다. 돈 잘 벌고 아내 사랑하고 불륜 마약 도박 가정폭력 등 나쁜 짓 하지 않으면 ‘만점남편’이지 집안일이 뭐 대수인가 할 것이다. 가부장문화에서 자란 한인이민1세 중년남성들의 생각이 대체로 그러하다.

남가주의 한 주부는 남편을 ‘미스터 줘’라고 부른다. 남편도 아내도 직장일 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퇴근하고 나면 딴판이 된다. 남편은 휴식 모드, 아내는 근무 모드이다. 아내는 집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주방으로 달려가 씻고 자르고 다지고 볶으며 저녁을 차리고, 남편은 거실 TV 앞에 비스듬히 앉아서 맥주잔 기울이며 그날의 피로를 푼다. 그리고는 도무지 자리에서 일어서는 법 없이 “밥 줘” “물 줘” “커피 줘” … 하니 별명이 ‘미스터 줘’가 된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중장년의 한인남편들 대부분이 그러했을 텐데, 아마도 그렇게 산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이다. 더 이상 ‘미스터 줘’로는 살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집안일과 육아 등 가사분담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팬데믹 기간 미국에서는 이혼이 늘었다. 팬데믹 3개월 차인 2020년 6월 이미 이혼을 고려 중인 부부가 전년에 비해 34%나 늘었다. 2021년에는 이혼이 전년도에 비해 21% 늘었다. 경제가 얼어붙으면서 닥친 재정적 어려움 그리고 코비드 관련 건강걱정이 몰고 온 스트레스가 부부 불화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아울러 가사분담을 둘러싼 부부간 충돌을 이혼의 또 다른 주요원인으로 전문가들은 추가한다.

팬데믹은 우리의 일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다. 그중 큰 변화가 가족의 일상이다. 아침이면 학교로 직장으로 흩어져서 각자 생활하다 저녁에 모이던 식구들이 하루 24시간 붙어 지내게 되었다. 얼굴 맞대고 복닥복닥 살다보니 가족끼리 더욱 끈끈해졌다는 가정들이 많다.

반면 너무 붙어 지내는 생활은 부부사이의 잠재적 불만들을 전면에 끌어냄으로써 가정들을 깨트렸다. 가사분담과 관련한 아내들의 불만이 대표적이다. 가족들이 24시간 집에 있다는 것은 그만큼 집안일이 많아졌다는 말이 된다. 설거지는 누가 할 건가, 아이 숙제 봐주기로 하고 왜 TV만 보나, 제발 양말 벗어서 아무데나 던지지 마라, 잔소리 좀 그만 하라 등 어린아이들 키우는 젊은 부부 가정에서 툭하면 터져 나왔던 언쟁이다.

일견 사소해 보이는 문제, 가사분담이 이혼으로까지 발전하는 이유는 젊은 세대 여성들의 인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특히 고학력 전문직 여성들에게 산더미 같은 집안일을 도맡아 한다는 것은 단순히 고단함의 문제가 아니다. 부부간 공정과 평등의 문제이다.

가사분담은 팬데믹 이전부터 부부갈등의 주요인이 되어왔다. 하버드 비즈니스 연구의 조사를 보면 전체 이혼 케이스의 25%는 가사분담을 둘러싼 갈등에서 비롯되었다. 이혼을 주도한 측은 물론 여성이다. 스탠포드 대학이 “부부는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같이 지내나”라는 주제로 진행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남편이 집안일, 육아 등을 등한시해서 불만이 쌓인 여성들 중 69%가 이혼을 요구했다. 집안일은 여성의 일, 남편은 거드는 정도로 충분하다고 여기던 때로부터 이 사회는 멀리 와있다.

한국에서 5월 21일은 둘이 하나 되는 날, 부부의 날이다. 부부관계를 돌아보고 서로의 소중함을 확인하면서 화목한 가정을 이루자는 날이다. 21세기 부부의 바른 관계는 협력관계이다. 수직이 아니라 수평, 생의 동반자로서 나란히 서서 함께 가정을 이끌어가는 관계이다. 이때 중요한 것이 평등감이다. 남편이 집안일을 공평하게 나눠할 때 아내는 존중받는 느낌을 갖는다. 단순히 설거지나 청소의 문제가 아니다. 상대방의 사랑과 존경이 느껴질 때 부부사이의 만족감은 높아진다. 부부가 사이좋게 사는 비결은 생각보다 간단할 수 있다.

<권정희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