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미국서 생산된 옥수수는 150억 부셀이 넘었다고 한다. 부셀(bushel)은 곡물 등의 부피를 나타내는 단위인데 1 부셀이 대략 35리터(8 갤런)쯤 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단위로 환산해 보면 그 양이 짐작된다.
하지만 이 엄청난 양의 옥수수가 모두 식용으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 흔히 먹는 스위트 콘은 전체 생산량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열매 속의 당분이 탄수화물로 바뀌기 전에 조기 수확을 하기 때문에 단맛이 강한 스위트 콘은 신선한 상태로 팔리거나 냉동식품, 아니면 통조림으로 식탁에 오른다.
나머지 미국산 옥수수 99%는 이른바 필드 콘들. 가공과 저장을 위해 완전히 마른 다음 수확한 후 콘밀, 콘칩 등을 위한 분말로도 가공되지만, 나머지는 식물성 연료인 에탄올, 각종 식물성 제품 원료, 동물 사료 등으로 활용된다.
같은 면적의 경작지에서 생산되는 옥수수의 칼로리와 단백질 양을 따지면 필드 콘이 스위트 콘 보다 2배 정도 많다고 한다. 전체 효용 면에서는 가공용 옥수수를 재배하는 것이 낫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미국과 같은 나라의 이야기고, 기근이 문제가 되는 지역에서 밭에서 키운 옥수수 중에서 당장 식량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얼마되지 않는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팬데믹 후 걱정되던 세계 식량 위기 우려가 차츰 현실화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세계 밀 수출의 25%를 담당하던 곡창지대는 포연에 휩싸였다. 우크라이나 산 곡물의 대부분을 외부로 실어 내던 흑해 연안이 봉쇄되면서 우크라이나 밀에 의존하던 나라들은 급히 다른 공급처를 찾아 나섰다. 그 여파로 세계 2위 밀 생산국인 인도가 밀 수출을 규제하고 나섰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마켓의 빵이나 과자, 라면 값 등이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나마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소비자들이 급격한 물가 상승을 우려하는 정도지만, 아프리카, 아시아, 카리브 연안 등의 빈곤국은 당장 떼거리를 걱정하는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 식용이 아닌 곡물 재배에도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다.
최근 미네소타 대학의 한 연구팀 보고서에 의하면 세계적으로 밀, 쌀, 보리, 수수, 귀리, 옥수수, 콩 등 주요 10대 작물 중에서 생산지에서 식량으로 사용되는 것은 30% 미만에 그치고 있다고 한다. 이 비율이 지난 60년대에만 해도 50%를 넘었다. 나머지 곡물은 다 어디 갔는가. 해외 수출이나 가공, 동물 사료 등을 위해 타지로 반출되는 곡물이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유엔 등 국제기구는 2030년을 지구상에서 기근을 완전히 해결하는 원년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목표 달성에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굶주림 해결 보다 딴 목적에 쓰이는 곡물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곡물에서 추수된 칼로리의 80%는 위에 말한 10대 작물에서 나오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 작물의 칼로리 생산량은 지난 50년새 2배가 늘었다고 한다. 하지만 2030년이 되면 이중 70%는 현지 주민의 식량 대신 다른 용도로 쓰이고, 전체의 16%는 동물 사료로 사용될 것으로 추정된다.
동물 사료의 수요가 느는 것은 지구 상의 중산층 때문이다. 이들은 곡물 보다 고기 등 단백질 원인 동물성 식품에서 영양분을 얻으려 한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은 늘게 마련, 이로 인해 가난한 나라의 식량 부족 상황은 계속된다.
전문가들은 산술적으로 2030년이 되면 지구에서 재배되는 곡물에서 나오는 칼로리로 전 인류가 먹고 사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 추세면 그 때도 50개 가까운 나라는 자국의 기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기아의 원인은 식량의 절대 부족이 아니라 인류 사회의 불평등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지금도 흰쌀밥이 소원인 사람이 있는 반면, 다이어트에 좋지 않다며 밥을 적게 먹기 위해 애쓰는 사람 또한 얼마나 많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