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픔과 깨달음’

2022-05-17 (화) 차창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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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견을 앓고 나서야 오십견의 아픔을 알았네
아파보지 않은 이가 남의 아픔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함을 알았네
사람들은 남들의 고난을 보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하지
내가 오십이 되어 오십견을 앓았듯이
불행할 수 있는 조건을 이미 가지고 있음에도
나는 달라, 애써 부인하면서
가끔은 시궁창에서 피어난 개나리처럼
활짝 웃는 날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인생 뭐 별거 있어
오십견은 시간이 가면 낫는 거 아냐
그렇게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어느 새 오십 년
저 언덕에서 어서 오라 손짓하는 것이 보이기 시작하지만
시력이 약해져서 보이지 않는다
내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애써 부인하면서 애써 행복하다가
오십견을 앓으면서 나는 알았네
아픔이 무엇인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곧 부처님의 가르침임을
아픔이 무엇인지 겪고 나서도 모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곧 시라는 것을

내 아픔에 비추어 너를 알게 되니 아픔만한 명약도 없네. 내 오십견으로 네 오십견 알고, 네 치통으로 내 치통 알아주니 아픈 만큼 깊어지겠네. 아무리 모질어도 아픔 없는 이 없을 터이니 사람이 사람을 아주 이해 못할 일은 없겠네. 아픔을 겪고도 모를 수 있다는 말, 아픔이 끝날 수 없는 이유처럼 들리네. 아파도 미루어 아는 아픔은 내 아픔만 못하네. 지구 한쪽에서 전쟁이 나도 걷던 걸음, 내 신발 속 모래알 하나에 멈추네. 해마다 부처님 오셔도 제가끔 다 아플 때까지 연등만 세다가 가시는 이유를 알 것 같네. 아프면 살리라. 아직 별이 되지 못한 지구에서의 일이라네. 반칠환 [시인]

<차창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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