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장수와 주거환경

2022-05-1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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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계산대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다 보면 다른 손님들의 카트가 눈에 들어온다. 라면 과자류 즉석조리용 식품들로 가득한 카트가 있는가하면 열무 배추 등 푸성귀와 각종 과일들로 채워진 카트가 있다. 카트를 보면 그 가족의 식습관이 보인다. 싱싱한 야채 과일 생선 위주의 식습관이 건강과 장수에 좋은 것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주거환경은 어떤가. 집안의 가구, 공간 배치, 텃밭이나 정원 등 주거환경이 장수에 영향을 미친다고 세계 장수마을들을 연구해온 댄 부트너는 말한다. 부트너는 100세 이상 장수인구가 밀집한 블루 존 지역들을 방문해 그곳 사람들의 삶을 오래 관찰해왔다. 그의 관찰에 따르면 이들의 장수 비결은 요란스럽고 의도적인 건강법이 아니라 생활자체이다.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까지의 일상생활이 자연스럽게 건강을 증진시켜서 나이 90이 되고 100세가 넘도록 건강하다.

이들의 공통점을 보면 삶의 환경이 무의식적으로 몸을 많이 움직이고 채소 위주의 식사를 하도록 이끈다. 대부분 자연 속에서 텃밭 가꾸며 사는 생활이어서 잠을 깨는 순간부터 부지런히 움직이고 직접 기른 채소들로 상을 차리며 이웃과 늘 어울린다.


이런 장수의 비결을 도시생활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이를 위해서는 카우치 포테이토 생활을 청산하고 과식하지 않으며 위생적이고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우선 중요한 것은 TV의 위치다. TV를 가능한 한 주방으로부터 멀리 두는 것이다. TV를 보면서 음식을 먹으면 배부른 것을 못 느낀다. 무의식적으로 계속 손이 가서 포테이토 칩 한 봉지가 어느새 사라졌는지 모르게 된다. TV와 주방이 멀면 귀찮아서라도 먹을 것을 덜 찾게 되고, 간식거리를 가지러 가려고 몸을 일으키면 조금이나마 걷게 되는 효과가 있다.

다음, 가구는 낮은 것을 선택한다. 미국에서는 매년 65세 이상 노년층의 1/4이 낙상한다. 노년의 낙상은 병원입원의 주된 원인이자 장수의 걸림돌이다. 부트너는 블루 존 중 하나인 일본, 오키나와의 좌식생활을 주목한다. 100세 노인이 매일 하루 20~30번씩 마룻바닥에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니 그 자체로 몸의 유연성과 균형감각, 하체의 힘을 기르는 운동이 된다는 것이다. 한인들도 참고할 만하다. 일단 높은 의자나 침대 등 오르내리기 힘든 가구들은 피한다.

장수를 위해 중요한 공간은 침실. 나이 들면 잠이 얕아지는 법. 충분한 수면은 심혈관계 건강과 인지능력 개선에 도움이 된다. 수면에 방해되지 않도록 빛을 완전히 차단하는 커튼을 치고 가능한 한 외부소음을 막아야 한다. 바람소리, 파도소리 등 잔잔한 자연음향을 틀어놓는 것도 수면 유도에 좋다.

아울러 반드시 챙겨야 할 것은 자연. 자연을 삶 속에 불러들이는 것이다. 옥외 공간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텃밭을 가꾼다. 매일 아침 밭에 나가 맑은 공기를 마시니 좋고, 농작물에 물주고 잡초 뽑다보면 운동이 돼서 좋고, 싱싱한 채소를 더 많이 먹게 되니 일석삼조이다. 텃밭 만들 땅이 없다면 집안에서 화분에 고추나 상추 등을 키울 수 있다. 그도 여의치 않다면 자연을 담은 사진이나 포스터라도 벽에 걸어두고 자연을 느끼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장수하는 사람들의 또 다른 특징은 사람들과 자주 어울린다는 것. 함께 먹고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동안 형성되는 끈끈한 연대감은 정신적 정서적 자양분이다. 문을 활짝 열고 이웃들을 맞는 열린 공간 - 장수로 가는 1등 주거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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