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험난한 새 대통령의 앞길

2022-05-17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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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새 대통령이 탄생하면 국민들은 기대를 걸고 야당은 협조를 해주는 허니문 기간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지난 주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그가 국정을 잘 수행할 것이라고 보는 국민들은 55%에 불과했다. 이명박 84%, 박근혜 78%, 문재인 87%에 비하면 현저히 낮다. 야당은 야당대로 노무현 대통령 시절 총리를 지낸 한덕수 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준을 해주지 않으며 새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러나 설사 총리 인준을 받는다 하더라도 윤석열 정부의 향후 5년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해결해야 할 국내외 문제가 산적해 있는데 하나 같이 쉬운 게 없다. 우선 전 정부가 관계 개선에 심혈을 기울인 북한만 해도 그렇다. 문재인은 북한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누구보다 노력했지만 돌아온 것은 없었다. 최근 코로나 대란까지 겪고 있는 북한이 대북 강경책을 쓸 것이 뻔한 윤석열 정부와 관계를 개선할 가능성은 요원하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가 친중국 행보로 비판을 받기는 했으나 한국의 대중 무역 비중은 작년 24%로 미국 13.4%, 일본 6.7%을 합친 것보다 많다. 무역 흑자도 중국에서 240억 달러, 홍콩 350억 달러로 미국 230억 달러보다 많다.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중국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일본도 그렇다. 문재인 정부가 국내용으로 대일본 강경 기조를 고집한 것은 맞지만 한일 관계가 근본적으로 개선되려면 위안부 문제를 비롯,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진솔한 사과가 선행돼야 하는데 일본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이를 그대로 두고 일본과 가까워지려 한다면 역풍을 맞기 십상이다.

국내 상황은 더욱 암울하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을 강행하며 원자력 대신 비싼 LNG 사용을 늘렸다. 그 결과 생산 단가는 올라갔는데 전기료 인상은 올 대선 이후로 미뤄 놨다. 한전의 올 적자 폭은 30조에 이를 전망으로 전기료 인상과 이로 인한 국민 불만이 불을 보듯 뻔하다.

문재인이 힘든 일을 뒤로 미룬 것은 이뿐이 아니다. 국민 연금은 오는 2055년이면 바닥이 난다. 1990년에 태어난 사람은 평생 돈만 내고 한 푼도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보험료를 올리거나 혜택을 줄여야 하는데 모두 인기 없는 일이다. 이를 잘 아는 문재인은 임기 내내 문제 해결에 손을 대지 않았다.

야당 시절 박근혜 정부가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을 40%까지 높여놨다고 비판했던 문재인은 대통령이 되자 60%도 괜찮다고 말을 바꿨고 민주당도 ‘곳간에 쌓아두면 썩는다’며 흥청망청 쓰는 것을 지지했다. 그 결과 한국의 국가 부채는 지난 5년간 400조가 증가했고 국채 비율은 2020년 이미 47%를 돌파했으며 2026년에는 66%를 넘어설 전망이다. OECD 비기축 통화 17개국 중 가장 빠른 증가세다.

곳간은 말라가는데 입은 잔뜩 늘려놨다. 문재인 집권 5년간 공무원 수는 13만 명이 늘어났다. 이명박 박근혜 두 정부를 합친 것의 2배가 넘는다. 이로 인해 이들 연금 충당 부채만 400조가 증가했다. 이뿐이 아니다. 공공기관 직원 수는 35%, 인건비는 6조, 적자 폭은 80조가 늘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인원 감축과 긴축 재정, 혜택 축소가 불가피한데 하나 같이 인기 없는 일이다.

국정을 수행하기 위해서도 야당과의 협치는 필수적이지만 이 또한 지난한 일이다. 한국 국민이 검사밖에 해 본 적이 없는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택한 것은 그 동안 문재인 정부의 온갖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한 그의 의지를 높게 샀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이제 와서 협치를 이유로 문재인과 이재명, 그리고 그 하수인들에 대한 수사를 중단한다면 윤석열 정부는 존재 이유를 잃게 된다. 그렇다고 수사를 강행한다면 협치는 물 건너 간다. 수사를 막기 위해 여론도 아랑곳 하지 않고 온갖 편법을 동원해 검수완박법을 통과시킨 이들이 아닌가.

설상가상으로 세계 경제는 고인플레와 금리 인상으로 침체에 빠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윤석열 정부는 시작부터 위기의 한 복판에 서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때로는 위기가 영웅을 만들기도 한다. 코미디언 출신의 볼로도미르 젤렌스키가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돼 강대국 러시아와 맞서 싸우며 세계인의 영웅으로 떠오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정치 초년생 윤석열이 과연 이런 난관을 뚫고 성공적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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