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4일에 시작된 러시아의 침공으로 1,000만명의 피난민이 우크라이나를 떠났고, 총 700여만명의 인구가 우크라이나 내에서 난민이 된 상황이다(4월5일 현재 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Migration 집계).
피난 중 박격포 폭격으로 몰살당한 우크라이나 일가족의 참담한 사진을 보며, 6.25 전쟁 한복판에서 어린 나이에 부서진 대동강 다리를 건넜던 까마득한 기억이 되살아온다. 막상 대동강을 건널 때는 노도처럼 밀리는 인파로 가족들과도 홀로 떨어져, 뒤에 남아 피난민을 정리하던 국군의 손에 이끌려 얼기설기 판자들을 띄운 출렁이는 부교 위를, 앙앙 울면서 한발자국씩 밟고서 건넜던 기억이다.
그때 그 군인 몇 명이 피난민들을 인도하지 않았더라면 오늘 내가 우크라이나 참사에 대해 쓸 수 있었을까. 어른 두세 명만 한꺼번에 밀렸어도 1월의 차디찬 강물 속으로 수장될 수밖에 없었던, 일사후퇴 당시의 피난 이야기이다.
뉴욕타임즈에 실린 우크라이나 일가족의 참사 사진은 세상을 경악시켰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던 남편 페레비니스(43세)는 코로나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러 동부 도네츠크 지역으로 가족과 떨어져 홀로 가있었고, 독일 소프트웨어 회사의 회계사였던 아내 테티니아(43)는 아이 둘과 따로 전쟁을 견뎌내고 있었다.
그러나 회사의 권유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게 되어, 피난길을 결정하고 폴란드에 이미 방까지 구해놓았으나, 그녀 역시 알츠하이머를 앓는 어머니 대피 문제로 출발을 연기하고 있었는데, 급박한 상황으로 키이우 외곽에서 아들 키타(18세)와 딸 엘리사(9세)를 앞세우고, 서둘러 떠난 피난길에서 박격포의 공격으로 온 가족이 몰살당한 참혹한 사진이다.
남편은 아내와 전날 밤까지 연락을 했었으나 통신망이 마비되어 연락이 끊겼었는데, 이르핀의 대피 경로에서 박격포 공격으로 한 가족이 사망했다는 게시물을 보게 되었고 잠시 후 한장의 사진과 함께 올라온 트위터 글에서 자신의 가족임을 확인했다고 인터뷰 중에 흐느껴 울었다.
3일 만에 우크라이나의 함락을 자신했던 블라드미르 푸틴, 그도 자식을 둔 아버지이며 아내를 가진 남편이란다. 유럽에 사는 전처의 두딸 외에, 31세 연하 연인과 네 자녀를 스위스로 숨겨 두었다는 푸틴, 그도 키이우의 그 참담한 일가족 몰살 사진을 보았을까. 전쟁은 영구히 말살되어야 할 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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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옥 / 샌프란시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