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하루 80갤런 vs 100만 갤런

2022-05-11 (수) 정숙희 논설위원
크게 작게
6월1일부터 일인당 물 사용을 하루 80갤런 이하로 줄여야한다. 잔디 스프링클러는 지역에 따라 일주일에 한번 또는 두번만 8분 이내로 돌려야한다. 1,200년만의 대가뭄을 맞아 메트로폴리탄수도국(MWD)과 LA수도전력국(DWP)이 남가주 600만 주민들에게 내린 사상 최강도의 절수령이다. 작년부터 자발적 절수를 호소했건만, 귓등으로도 안 듣는 사람들이 많아서 결국 초강수를 두게 된 것이다.

80갤런은 얼마나 되는 양일까? MWD에 따르면 우리는 매일 한사람이 평균 125갤런의 물을 쓰고 있다. 그러니까 35%나 줄이라는 것인데, 사실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각 가정에서 쓰는 물의 70%는 야외에 뿌려지기 때문으로 잔디, 세차, 드라이브웨이 청소만 줄이면 집안에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은 80갤런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의 양은 대략 다음과 같다. 세탁기를 한번 돌리면 21.2갤런, 디시 워셔는 5갤런을 쓴다. 변기 물 내리기 1.1갤런, 5분 샤워에 9갤런, 종일 수도꼭지를 통해 내려가는 물이 11.1갤런이다. 이중 가장 많이 물이 낭비되는 곳은 변기로, 1990년 이전에 설치된 오래된 변기는 한번 플러시에 6갤런이나 쓰는 반면 절수용 변기는 1.3갤런으로 차이가 엄청나다. 변기만 갈아도 하루에 33갤런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아울러 샤워헤드를 절수형으로 교체하면 12갤런의 절감 효과를 볼 수 있고, 세탁기와 디시 워셔도 절수형으로 교체하고 용량이 풀로 찼을 때만 돌리면 물과 에너지를 동시에 절약할 수 있다.


물 전문가들은 또 이런 절수 방법들을 권장한다. 샤워 시간을 2분 줄이면 5갤런이 절약되고 이 닦을 때, 면도할 때, 설거지 비누칠하는 동안 수도꼭지를 잠그기만 해도 4~5갤런을 벌 수 있다. 샤워할 때는 물이 더워지기를 기다리며 흘려보내는 물을 큰 통에 받아두었다가 정원수로 사용하고, 정원 물주기는 한낮이 아닌 아침저녁에 함으로써 수분 증발을 막는다. 세차하는 간격을 늘리고, 드라이브웨이나 도로변을 청소할 때는 물로 씻어 내리지 말고 빗자루로 쓸어버릇해야 한다. 6월1일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지금부터 이런 일들이 일상화되도록 생활습관을 바꿔야겠다.

그런 한편 이런 노력들에 왕창 찬물을 끼얹는 이야기가 있다. 작년 10월 LA타임스는 남가주의 골프장들이 매일 100만 갤런의 물을 잔디에 뿌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푸른 잔디를 유지하기 위해 아낌없이 스프링클러를 돌린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는 플로리다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골프장이 많은 주로, 무려 921개 골프코스가 있다. 이를 위해 소비되는 물의 양이 하루에 얼마나 될지 계산하기도 싫다. 물론 모두 식수를 쓰는 것은 아니고 상당부분 재활용수나 지하수를 끌어다 쓴다고는 하지만, 이런 최악의 가뭄 속에 단 1갤런이라도 줄이려고 아등바등하는 사람으로서 분노와 허탈감을 억누르기 힘들다.

가주에서 물 낭비의 주범이 잔디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미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깔끔하게 깎은 ‘매니큐어 잔디’(manicured lawn)에 대한 집착이 심하다. 수백년전 떠나온 ‘영국식 정원’에 대한 향수가 남긴 유산일까, 집집마다 앞뜰과 뒤뜰에 잔디를 심고 가드너를 고용하여 매주 정성껏 깎는다. 그런데 그렇게 가꾸는 잔디에서 무엇을 하는가? 결국 스윗홈을 상징하는 ‘관상용’일 뿐인 잔디의 존재이유에 관해 다시 생각해봐야할 때가 왔다고 본다.

요즘 동네를 산책하다보면 잔디를 없애고 가뭄에 잘 견디는 ‘캘리포니아 네이티브 가든’으로 바꾼 집들을 곳곳에서 보게 된다. 인공적으로 관리하는 잔디보다 얼마나 자연스럽고 풍성해 보이는지, 야생의 멋이 훨씬 아름답고 여유롭다.

팬데믹 기간 동안 정원과 텃밭 가꾸기 취미를 갖게 된 사람들이 많다. 이제 흙을 손에 묻히지 않고는 하루를 시작하지 않는다는 친구도 있다. 잔디를 점점 줄이고 대신 과실수와 꽃나무, 상추와 토마토를 심으면 식탁과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물은 설거지물, 샤워물 등을 모은 재활용수를 사용하면 더욱 좋겠다.

지금 미 서부지역의 대가뭄이 얼마나 심각한가 하면 최대 규모의 저수지들인 미드호와 파월호의 담수량이 역대 최저 수준까지 내려갔고, 그 바람에 바닥이 드러난 미드호에서 수십 년 전 유기된 시체가 발견될 정도가 되었다. 가주에서 가장 큰 저수지인 샤스타호와 오로빌호 역시 기록이 측정된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내려갔다. 이 상태로 가뭄이 계속된다면 10년 후엔 골프도 못 치게 될 수가 있다. 그러기 전에 다 같이 행동해야한다. 자연재해 수준이 아니라 불이 난 것처럼, 지진이나 홍수나 허리케인이 난 것처럼 긴박하게 대처해야한다.

우주 공상과학소설 ‘듄’에는 ‘아라키스’라는 사막행성에서 살아가는 프레멘 종족이 나온다. 워낙 물이 부족한 환경에서 살아온 이들은 몸에서 배출되는 단 한줄기의 호흡이나 땀, 분비물의 수분도 허비하지 않기 위해 이를 정화하여 식수로 재활용하게 만들어진 사막복을 입고 다닌다. 이들은 눈물을 흘리거나 침을 뱉는 일도 없고, 심지어 장례 절차에서 중요한 과정은 시신의 체내수분을 추출하는 의식이다. 우리도 그런 사막복을 입어야할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물은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우주 탐사도 결국은 물이 있는 곳, 생명체가 있는 곳, 비상시에 인류가 옮겨가 생존할 수 있는 행성을 찾으려는 노력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물에서 나왔고, 물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정숙희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