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기록에는 단어 사이의 띄어쓰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필경사들이 쓴 책에서는 모든 줄, 모든 장에 걸쳐 단어가 연이어 기록되었다. 오늘날 이 같은 형태는 ‘스크립투라 콘티누아(Scriptura Continua)’라고 불리는데 단어사이의 띄어쓰기가 없는 것은 언어의 기원이 말에 있음을 반영한다. 13세기 무렵 스크립투라 콘티누아는 각 지역의 언어로 쓰인 문서뿐 아니라 라틴어로 쓰인 문서 대부분에서 사라졌다. 구두점 역시 보편화되면서 독자들은 더욱 편해졌다. 글쓰기는 처음으로 듣기뿐 아니라 보기위한 것이 되었다.” (니콜라스 카의 ‘The Shallows’ 중에서)
글이 처음 기록될 때 사용된 판은 주로 파피루스, 양피지 혹은 밀랍판이었다. 값이 비쌌다. 긴 글을 경제적으로 기록, 보전하기위해 띄어쓰기, 점찍기, 여백 만들기는 허락되지 않았다. 모든 페이지에 걸쳐 단어와 문장은 연이어 씌어졌다. 이런 문장을 이해하려면 소리 내어 반복해서 음독해야 한다.
빽빽하게 연이어 기록된 문장을 소리 내어 몇 시간씩 읽다보면 집중력과 문해력이 점점 저하된다. 무슨 내용을 읽었는지 기억도 점점 희미해진다. 읽는 도중에 자꾸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띄어쓰기, 점찍기, 문단 나누기, 여백 만들기 등이다. 이후로 스크립투라 콘티누아의 오랜 전통은 책 안에서 점점 사라졌다.
책 만들기와 책 읽기에서 스크립투라 콘티누아 관습이 사라지자 인간의 사고와 인지능력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사람이 책을 읽으면서 그 전보다 깊이 생각하고 묵상할 수 있는 침묵의 시간을 더 많이 얻게 되었다. 침묵을 통해 더 깊이 생각하고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자 이제 인간은 펜을 들고 종이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읽기와 함께 글쓰기에 몰입하게 되자 인간은 전보다 훨씬 더 창의적이 되었다.
무엇 사이에 행간(行間)을 두는 것은 인지적 향상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두엽의 활동을 향상시켜 지적, 영적능력을 견고하게 한다. 시글락의 위기를 수습한 다윗을 침묵의 행간을 보라.
리더십이 필요할 때 마다 시내산에서 조용히 하나님과 독대하던 모세를 보라. 깊은 침묵을 배경으로 한 말과 기도는 비범한 지혜와 영성을 낳는다. 당신은 리더인가. 한 동안 단어 사이의 행간두기와 여백의 미학을 무시했던 스크립투라 콘티누아의 오류를 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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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