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면 벌 나비가 날아드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다. 알록달록 화려하고 향기로운 꽃들의 유혹에 곤충들은 날아들어 달콤한 꽃의 꿀, 화밀로 배를 채우고, 그러는 사이 자연스럽게 수술의 꽃가루를 암술에 묻혀줌으로써 꽃들이 열매 맺게 한다. 가장 이기적 욕망들이 마주쳐 서로에게 득이 되도록 정교하게 짜여 진 생명의 향연, 생태계의 신비로움이다. 그런데 돌연 한쪽 욕망의 주체가 사라진다면 다른 쪽은 어떻게 될까. 그 흔하던 벌 나비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4월의 마지막 주, 특이한 뉴스가 화제가 되었다. 이름하여 ‘꿀벌 구출작전’. 알래스카의 꿀벌 수입업자가 북가주 새크라멘토의 양봉농원을 통해 구입한 꿀벌 800파운드, 대략 500만 마리가 조지아, 애틀랜타에서 모두 죽게 돼 인근 양봉업자들이 구출에 나섰다는 내용이다.
일요일이던 지난달 24일 애틀랜타의 양봉협회 회원 에드워드 모건은 전화 한통을 받았다. 생면부지의 여성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당신을 몰라요, 당신도 나를 몰라요, 하지만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여성은 ‘새라의 알래스카 꿀’이라는 사업체를 운영하는 새라 맥클리아였다. 알래스카의 양봉업자들을 위해 벌통 200개를 주문했는데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알래스카에서는 사과농장 등 과수원과 종묘원의 작물들 가루받이를 위해 외지에서 꿀벌을 들여온 지 오래다. 꽃 피면 벌 날아드는 자연의 섭리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새라는 4만8,000달러 상당의 벌통들이 지난달 22일 델타항공을 통해 새크라멘토에서 시애틀 거쳐 앵커리지에 당도하도록 주선해두었었다. 그런데 시애틀 행 비행기에 벌통 싣기가 마땅치 않자 항공사는 벌들을 애틀랜타 행 비행기에 실었다. 델타 허브인 그곳에 앵커리지 직항노선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예상치 못하게 하루 이틀 지체 되고, 처음 냉장창고에 보관되었던 벌통들이 옥외로 옮겨지면서 ‘사고’가 났다. 기온에 민감한 꿀벌들이 화씨 86도의 뜨거운 열기와 굶주림을 견뎌내지 못했다. 이런 사태를 염려한 새라의 부탁으로 그 지역 양봉업자 20여명이 꿀벌 구출에 나섰지만 극히 일부를 건져냈을 뿐이었다.
꿀벌 떼죽음 소식을 들으면서 두어 주 전 한국 TV뉴스에서 본 장면이 떠올랐다. 사과농장에서 사람들이 면봉을 들고 꽃가루를 일일이 암술에 묻히는 기이한 장면이었다. 벌이 없어서 벌이 하던 일을 사람들이 하는 것이었다. 농촌의 일손부족과 비싼 인건비를 생각하면 이런 인공수분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최근 개발된 것이 가루받이용 드론이다.
벌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중요한 존재다. 벌이 있어 자연생태계가 돌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꽃피는 식물은 가루받이로 종이 이어지는데 그 일등 공신이 벌이다. 벌들은 꽃피는 식물들과 수백만년 상호 진화하면서 꽃가루 옮기기 최적의 몸체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유엔식량기구에 의하면 세계 100대 농작물의 70% 이상이 벌들의 가루받이에 의존한다. 이를 돈으로 환산하면 2,350억-5,770억 달러의 노동량이다.
이런 천혜의 일꾼들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감지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였다. 세계 각지에서 벌의 개체수가 줄었다는 관측결과가 보고되었다. 꿀을 따러 나간 일벌들이 돌아오지 못하거나 벌 진드기로 유충이 대량 폐사하면서 벌집이 텅텅 비는 현상이 나타났다. 집단 벌집붕괴현상이다. 2018년 미국 양봉업계는 집단 벌집붕괴현상으로 벌 개체수가 41% 줄었다고 보고했다. 한국 양봉협회는 올봄 근 80억 마리의 벌들이 사라졌다고 탄식했다. 봄꽃 만개할 시점에 맞춰 벌통을 열어본 양봉업자들은 기함을 했다. 월동 전 벌통 안에 그득했던 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벌들이 왜 사라지는지 정확한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다.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후, 살충제 등 농약 남용, 기생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과학자들은 보고 있다. 벌의 멸종은 생태계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수분이 안 된 식물들이 열매를 맺지 못해 사라지고, 이들을 먹이 삼는 곤충과 초식동물, 이어 조류와 육식동물들이 연쇄적으로 소멸하는 멸종의 도미노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식량고갈로 인류도 생존을 위협 받게 된다. 꿀벌 등 꽃가루 매개 곤충이 사라지면 매년 142만명 이상이 사망할 것이라는 하버드대 연구결과가 있다.
이 모두는 결국 인간이 초래한 재앙이다. 난개발로 인한 환경파괴부터 지구온난화까지 인간이 만든 비정상적 환경에서 여린 벌들이 버티지를 못하는 것이다. 멸종위기를 맞은 벌들이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가 있을 것이다. “벌들이 살 수 없는 환경에서 너희 인간들은 언제까지 살 수 있겠는가.”
알래스카의 양봉업자 새라는 델타항공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한편 앞으로는 새크라멘토로 직접 내려가 벌들을 ‘모셔’ 올 계획이다. “꿀벌들의 가루받이에 우리 인간이 얼마나 의존하는지 사람들은 모른다”며 수백만 꿀벌들의 폐사는 ‘의심의 여지없는 비극’이라고 가슴 아파했다.
개발에 집중되었던 관심을 보존으로 돌려야한다. 자연이 더 이상은 감당하지 못한다. 벌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이라야 우리도 살 수 있다.
<
권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