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시애틀에서 일어난 일이다. 당시 고등학교 운동선수들을 태운 12피트 높이의 버스를 몰던 운전사는 9피트높이의 차까지만 통과가 가능한 콘크리트 다리와 충돌했다.
버스 지붕은 찢겨 날아갔고, 21명의 학생들이 다쳐 병원으로 실려 가야 했다. 운전사는 경찰 조사에서 자신은 GPS가 알려준 대로 운전하고 있었으며, 전방에 다리의 높이가 낮다는 걸 경고해주는 신호나 섬광등 같은 걸 ”전혀 보지 못했다“라고 진술했다.
자동화에 대한 편향은 분석이나 진단 과정에서 의사결정 지원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위험하다.”(니콜라스 카의 ‘The Glass Cage’ 중에서)
자동화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왜 무능해지는가. 인터넷을 맹신할수록 인간사회를 통제하는 힘은 왜 점점 무기력해지는가. 자동화 기술이나 컴퓨터는 인간에게 새로운 차원에서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도와주지 않기 때문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검색 서비스의 발달로 현대인은 인류 역사가 열린 이래 가장 부요하고 최고의 기술 문명을 누리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렇게 많이 알고, 이렇게 많은 일을 재빠르게 해 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이 이렇게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대인이 이렇게 빨리 움직일수록 그 존재방식은 점점 비윤리적이고 비문화적으로 전락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대인들은 늘 다니는 길을 왕래할 때에도 습관적으로 GPS 사용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미 습득해서 잘 알고 있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GPS에 의존하면 할수록 인간의 뇌는 움직이지 않고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그뿐만 아니다. GPS과 같은 자동기계에 너무 의존하는 사람은 주변 환경을 시각적으로 인지하고 기억해 내는 능력이 차단되어 감각경험의 질을 저하시킨다.
지식노동과 육체노동은 서로 차원이 다른 영역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숲과 강이 분리될 수 없듯이, 생각은 몸과 분리될 수 없다.
몬테카시노 수도회를 창설한 베네딕도는 말했다. “노동은 기도다. 기도하며 일하라(Ora et labora)”.
육체적 수고와 머릿속 사고를 분리하지 않을 때, 지적노동을 육체적 노동과 함께 수행할 때, 우리는 자동화의 맹신에서 벗어날 수 있고 용불용설(用不用說)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 성경은 말씀한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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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 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