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4.29를 넘어 한인사회가 갈 길

2022-04-29 (금)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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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이 화산대라는 사실을 우리는 몰랐다. 1970년 전후 이민물결 따라 낯선 땅에 와서 10년 남짓 억척스럽게 일해 모은 돈으로 “이제 내 비즈니스 차리자”는 생각뿐이었다. 임대료 싼 지역을 찾다보니 닿은 곳이 사우스 LA, 지금의 한인타운 바로 남쪽 흑인 빈민지역이었다. 그곳에서 오래 자영업을 하던 유대인들은 그즈음 하나 둘 가게를 한인들에게 넘기고 떠났다. 그들은 감지했던 걸까, 빈민층 흑인들의 가슴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던 마그마가 조만간 터지리라는 것을.

대대로 겪어온 제도적 학대와 인종차별, 불평등의 벽에 막혀 헤어날 길 없는 빈곤, 피해의식과 적개심 절망감이 빚어낸 높은 범죄율 그리고 가혹한 공권력. 그곳은 틈만 나면 폭발할 활화산이었다. 그리고 1992년 4월 29일, LA 폭동은 일어났다.

한인이민의 단장(斷腸)의 고통, 4.29 폭동 일어난 지 30년이 되었다. 분노에 눈먼 폭도들이 불 지르고 약탈하고 파괴하며 북상하던 행로를 따라 한인타운이 시뻘겋게 불타던 광경이 눈에 선하다. 그때의 비통함이 가슴에 생생하다.


분노의 화살이 향했어야 할 곳은 백인주류사회인데 힘없는 한인들이 분풀이 대상이 된 부조리 앞에서 한인사회는 참담했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라고 믿으며 피땀으로 일군 2천여 비즈니스가 하루아침에 쑥대밭이 되었다. 이민의 삶이란 땀 흘려 돈 버는 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 기필코 이 사회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가장 뼈아픈 방식으로 체득했다.

4.29 폭동은 한인사회에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깨우쳐주었다. 미국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이자 지금도 유효한 미국사회 사는 법이다. 7080년대 한국이 가난했던 시절, 미국은 천국의 다른 이름이었다. 미국에만 가면 영화에서 보듯 매일 파티하면서 사는 줄 알고 이민가방에 파티 복을 챙겼을 정도였다. 미국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폭동은 첫째, 미국은 인종차별의 나라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백인들이 미국의 정신적 토대를 세웠다면 이 나라의 물리적 주춧돌을 쌓은 것은 흑인노예들이다. 백인주인과 흑인노예 체재가 수백년 이어졌고 그렇게 형성된 차별의 뿌리는 깊다. 흑인들에게 차별은 삼키고 삼키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할 어느 순간 기폭제가 된다.

고속도로를 질주하다 잡힌 흑인운전자 로드니 킹을 무자비하게 폭행한 백인경관 4명에게 전원 무죄평결이 내려진 그날 흑인사회는 폭발했다. 한인사회는 영문도 모른 채 희생양이 되었다.

차별은 지금도 엄존한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흑인생명도 소중하다(BLM)’ 캠페인이 들불처럼 번졌지만 유사 사건은 그치지 않고 있다. 한인 2세 3세들이 BLM에 열심히 참여하는 모습은 한인사회의 성숙한 단면이다.

둘째, 타인종은 함께 살아야할 이웃이라는 사실이다. 그 엄연한 사실을 이민초기 한인들은 깨닫지 못했다. 하루하루 살기 급급해서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백인들의 인종차별에 편승해 흑인들을 눈 아래로 보았던 것도 사실이다. 단일민족을 자랑 삼으며 우리가 꽤나 인종차별적인 것도 인정해야 하겠다.

주류 미디어가 한인업주와 흑인주민 간 갈등으로 한껏 부각시킨 ‘두순자 사건’ 최종판결이 폭동 불과 8일 전 내려졌다. 1달러 79센트짜리 오렌지주스 한 병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다 업주가 15세 흑인소녀에게 총을 쏘아 숨지게 한 사건이었다. 두 씨는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폭동 중 폭도들을 자극한 한 요인이 되었다. 당시 그 업소는 완전히 불탔다.


사건은 “겨우 주스 한병 ~”으로 프레임 되었지만 내막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당시 한인업주들은 툭하면 강도를 당하고 총격을 받으며 거의 목숨 내어놓고 장사를 했다. “오늘 하루 무사히 넘기자”가 많은 업주들의 기도였다. 덩치가 산만한 흑인이 들어오면 겁부터 났던 한인업주들에게 손님은 ‘그냥 돈벌어주는 기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폭동 이후 가장 크게 변한 것은 한인업주들의 태도였다. 커뮤니티 모임에 참석하고 관할 경찰들과 교분을 쌓으며 타인종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것이 비즈니스의 기본이 되었다.

셋째, 힘이 있어야 보호받는다는 사실이다. 한인타운이 무참하게 파괴될 때 경찰은 오지 않았다. 행콕팍, 베벌리 힐스 등 백인지역으로 폭동의 불길이 번지지 않도록 철통 경비하는 데 경찰력이 집중되었다. 힘을 길러야 주류사회/타인종으로부터 무시당하지 않고 정당하게 대우받는다는 것은 다인종사회 불변의 진리이다.

정치력 신장은 폭동 이후 한인사회의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연방의회, 주의회, LA 시의회 등 각 지역 정계에 1.5세 2세들이 속속 진출한 것은 한인이민의 괄목할 성과이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했다.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현재를 이해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잡을 수 있다. 폭동 피해를 직접 경험하고 그 충격을 이겨낸 한인사회에 과제가 있다. 정치적 경제적 힘을 더욱 키워 보다 나은 미국건설에 기여하는 것이다. 인종주의 없는 평등한 사회,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겠다. 그것이 이 사회의 주인으로서 할 일, 궁극적으로 우리가 살고 다인종 이웃들이 살고 미국이 사는 길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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