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흥진의 Hollywood Interview
우크라이나서 태어난 ‘빙판의 여제’ 옥사나 바이울
우크라이나의 드니프로에서 태어난‘빙판의 여제’ 옥사나 바이울(44)은 러시아의 침공을 받고 있는 조국의 얘기를 하면서 감정에 격해 깊은 한숨을 쉬고 눈물을 흘렸다. 16세 나이에 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머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서 피겨스케이팅 부문 금메달을 딴 바이울을 영상 인터뷰했다. 바이울은 이후 프로로 전향,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를 돌며 아이스 쇼 순회공연을 했는데 한국도 방문했다. 바이울은 또 자기 삶을 다룬 영화에도 나왔고 몇 편의 TV작품에도 출연했다. 라스베가스의 자택에서 인터뷰에 응한 바이울은 다소 수줍어하는 표정이었지만 눈물을 흘리다가도 밝은 미소를 지으며 신중하게 질문에 대답했다.
노르웨이 릴레함머 동계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금메달 시상식 장면.
-우크라이나에 친척이나 친구가 있는가.
“삼촌이 있는데 그는 지금 러시아군에 대항해 싸우고 있다. 그리고 그의 부인은 군인들을 위한 국기를 만들고 있다. 그들이 겪고 있는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나는 우리 모두가 그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믿는다.”
-무엇이 당신을 행복하게 하고 또 현재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난 지난 2012년 내 생애 최고의 사랑으로 이탈리아 사람인 칼로 J. 파리니와 결혼해 지금 여섯 살 반 난 딸을 두고 아름답고 사랑에 찬 삶을 누리고 있다. 나는 딸에게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말해주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곧 루이지애나 주의 슈레비포트로 이사해 남편과 함께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위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일을 할 것이다. 그 것이 현재의 내 꿈이다.”
-소련 공산권 치하에서 출생하고 성장했는데 그 때 삶이 어땠는가.
“우리 집 냉장고에는 버터도 없었고 나는 빵을 구하기 위해 긴 줄에 서 있어야 했다. 그리고 일요일이면 할머니와 함께 암시장에 가 일주일 먹을 식량을 사곤 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스케이팅 연습을 하기 위해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5시에 일어나 전차를 타고 링으로 갔다. 때론 전차가 만원이어서 링까지 걸어가야 했다. 물론 모든 경비는 국가가 지불했다. 스케이팅으로 인해 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여름이면 내 고향 드니프로를 비롯해 키이우 등 여러 도시에서 온 피겨 스케이팅을 하는 아이들과 함께 크리미아의 여름 캠프에서 보냈다. 크리미아는 그 때부터 우크라이나의 땅이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가 더 이상 저항하지 말고 항복하라고 말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TV로 그의 발표를 들은 뒤 내 첫 반응은 우리는 싸울 것이고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결단이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자기를 무서워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의 발표 후에 우크라이나에 있는 사람들과 교신했는데 모두 싸우겠다는 것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들은 자기 아이들을 이웃 폴란드나 루마니아로 피난시키면서도 자기들은 조국에 남아 싸우고 있다. 내가 잘 아는 유명한 한 스케이터도 싸우고 있는 남편을 떠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크라이나는 처참한 상황이다.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 수백 명에 이른다. 푸틴은 4천5백만 명의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모두 자기처럼 만들려고 하고 있지만 어림없는 일이다. 우리는 우크라이나 국민이지 결코 러시아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들이다. 우리는 늘 러시아사람들을 사랑했는데 이젠 모두 크게 실망하고 있다.”
-어린 딸에게 어떻게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이해시킬 수가 있는가.
“어제 딸과 함께 차를 타고 라스베가스 불러바드를 지나갈 때 내가 손에 들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기를 보고 내 옆으로 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이 계속해 경적을 울렸다. 내 딸도 작은 국기를 손에 들고 있었다. 거리에는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고 차를 모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같은 이들을 통해 딸은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내 딸은 ‘푸틴아 너의 손을 우크라이나이로부터 떼놓아’라고 말하고 있다. 딸이 내가 TV로 우크라이나 상황을 보면서 울 때마다 난 강해지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난 딸이 조국의 참상을 보지 못하도록 그의 눈을 가리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때론 딸이 너무 오래 동안 그 같은 참상을 보자 못하게 채널을 바꾸고 있다.”
-체육인들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보다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우린 모두가 손에 손을 잡고 함께 일하고 있다. 피겨 스케이터인 낸시 케리간이 제일 먼저 내게 전화를 걸어 ‘나 네 생각하고 있어 그리고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어’라고 위로의 말을 전해왔다. 그 밖에도 내가 관계한 이 곳에서 있은 평화행진에도 여러 명의 체육인들을 초청해 함께 행진했다. 우리는 최선을 다 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성금을 기부하고 또 어떤 사람은 마음 문을 열고 기도를 하고 있다. 우리는 이길 것이다. 뭉치면 산다. 난 우크라이나를 위해 도움을 주고 기도를 하고 후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지극히 감사할 뿐이다.”
-조국의 침상을 본 뒤 상한 마음을 어떻게 치유하는지.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돕는 일을 하면 나 자신에 대해 좋게 느끼게 된다. 그 것이 내 치유의 한 방법이다. 나는 서로가 서로를 돕는 주민들 사이에서 자랐다. 식량을 살 돈이 없으면 이웃에게서 빌려 쓴 뒤 갚곤 했다. 지금 우크라이나가 그 때와 똑 같다. 주민들이 서로들 모든 것을 나누어 쓰고 있다. 그리고 옛날처럼 어려운 환경 하에서도 일터로 나가고 있다. 나도 처음에는 미국에 일하러 왔다. ‘챔피언 온 아이스’ 순회공연을 위해 몇 달간 머물다가 돌아갈 예정이었다. 나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이다. 그들을 돕는 것이 나를 돕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미국에서 살다가 자기 고향인 드니프로로 돌아간 남자 피겨스케이터를 위해 성금을 송금했다. 나는 전 세계 우크라이나 인들에게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따라서 반드시 서로를 도와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지금 하고 싶은 말은.
“기도하고 강하라. 강하라 그리하면 우리는 이 난관을 이겨낼 수 있다.”
-1994년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소감은.
“나는 우크라이나 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금메달을 딴 사람으로 지금까지도 그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막상 시상식에 참석하려고보니 우리나라의 국기를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세계만방에 소련 공산권 치하의 우크라이나의 위치를 보-여주는 일이었다. CBS-TV가 시상식을 중계할 때 우리 나라의 국기와 함께 시상식 단에 선 내 얼굴을 보고 감격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내가 30년 전에 미국에 왔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소련은 알았지 우크라이나는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우크라이나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고유의 영토를 지니고 있으며 음악을 비롯해 고유의 문화와 자신의 국가를 지닌 나라다.”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히틀러의 유대인 말살 정책과도 같다고 말했는데 유대인인 당신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어느 당에 속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그 어떤 정치인을 위해서 말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우크라이나 대지 위에 살고 있는 시민들을 위해 말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다. 나의 할머니가 루마니아 계 유대인이어서 시베리아로 추방됐었다. 거기서 내 어머니가 태어났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친척이 드니프로에 살아 가족이 그 곳으로 이주했고 내가 태어났다. 나는 자신의 유대인 뿌리에 대해 한참을 몰랐고 나이가 꽤 먹기 전까지는 그 것을 알고도 받아들이질 않았다. 왜냐하면 할머니의 이웃들이 ‘너는 유대인이야’라고 소리를 질러댔기 때문에 그 것이 창피 했었다. 그래서 할머니와 나는 모두 우리들의 뿌리를 숨기며 살았다. 미국에 와서야 내 뿌리를 수용하고 유대인을 돕는 일에 전력을 다 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나는 오데사에서 고아들을 돌보고 있는 유대인 기관에 도움을 주고 있다.”
-푸틴을 히틀러나 무솔리니와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나는 공개적으로 푸틴에 대한 반대 선언을 한 사람이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겠다는 말을 했을 때만해도 그 말을 믿지 못했다. 우크라이나의 시민들은 러시아의 시민들에 대해 몹시 분개하고 있다. 지금 러시아군인들이 우크라이나에 하고 있는 짓은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일이다. 장차 푸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그른 일을 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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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