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AP가 보도한 페루의 ‘공동 솥’ 이미지가 가슴 한쪽에 박혀 떠나지를 않는다. 수도 리마의 먼지 날리는 사막언덕 판자촌마다 ‘공동 솥’이 걸렸다고 한다. 물가가 너무 비싸 끼니를 이어갈 수 없게 된 빈민촌 주민들이 일종의 상호부조 생존전략을 고안해냈다. 각자 식재료를 사고 연료를 구해 음식을 만들 형편이 못 되니 주민들이 돈을 모아 공동으로 조리해 함께 나눠먹는 방식이다. 지난 2월 페루 정부자료에 따르면 2년 전 코비드-19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등장한 ‘공동 솥’은 이제 전국에 3,400개, 그중 70%가 리마에 있다. 아침 점심 저녁, 식사 때가 되면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던 아늑한 광경이 사라진 것이다.
‘공동 솥’ 운영은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최근 리마의 한 달동네 ‘공동 솥’ 주민들은 미화로 16달러 정도의 돈을 모았다. 그 돈으로 닭 뼈 4파운드 반, 감자와 쌀 각 11파운드씩을 사서 조리해 아이들과 노인들 중심으로 70명을 먹였다. 그렇게 먹고 나면 그날의 식사는 끝. 식사는 하루 한 끼다. 그나마 돈이 걷히지 않는 날은 온종일 굶는다. 그런 날이 지난 1월 이후 10여일.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먹을 수는 있을까”가 최대 관심사이다.
코비드-19으로 인한 물류 차질, 기후재난, 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겹치면서 2022년 지구촌 주민들의 삶은 어렵다. 페루의 경우,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인플레이션은 3,300만 국민들, 특히 하루 3달러로 생활하는 1,000만 빈민층을 강타했다. 자고 나면 뛰는 식품가격, 연료가격에 정부의 무능이 겹치면서 참다못한 국민들은 거칠게 분노하고 있다. 물가고에 항의하며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반정부 시위가 2개월째 확산되고 있다.
고물가로 성난 민심은 페루만의 문제가 아니다. 치솟는 물가와 생필품 부족으로 시위가 격렬했던 스리랑카는 지난 주 결국 채무불이행 선언을 했고, 파키스탄의 분노한 민심은 총리를 물러나게 했다. 팬데믹 2년을 가까스로 버틴 세계 각 곳의 취약계층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가와 곡물가가 폭등하자 벼랑 끝으로 내몰린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들 두 국가에서 밀과 옥수수, 식물성 기름을 대량 수입하던 중동과 북아프리카 국가들에 특히 심각한 타격을 미쳤다. 마침 4월은 이들 이슬람국가의 가장 성스러운 달인 라마단. 일출부터 일몰까지 10여 시간 금식하며 명상과 기도를 하고 해가 지면 가족친지들이 둘러앉아 전통 명절음식으로 공동식사를 하는 것이 전통이다.
그런데 올해는 많은 가정들이 공동식사 전통을 따르지 못하고 있다. 물가가 너무 비싼데다 필요한 식재료를 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밀의 50%를 우크라이나로부터 수입하는 튀니지의 경우, 식품가격이 최근 50%나 뛰어올랐다. 밀 수입량의 80%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의존하는 이집트의 사정은 더 좋지 않다. 전쟁은 우크라이나에서 터졌지만 여파는 세계 각국에 미치고 있다.
먹을 게 없어 굶는 것만큼 서러운 일은 없다. 돈이 없어 자녀들을 먹이지 못하는 것만큼 부모에게 괴로운 일은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각 지역 성난 민심들이 어떻게 폭발할지, 어떤 사회불안과 정치적 불안정을 몰고 올지 알 수가 없다. 2011년 중동과 북아프리카 일대를 휩쓸었던 민주화 운동 ‘아랍의 봄’도 근원을 짚어보면 식품가격 폭등에서 촉발되었다. 독재를 참고 참다가도 굶주림이 극에 달하면 폭발하는 법이다. 전쟁을 저지른 푸틴의 죄과는 우크라이나에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에서도 물가상승은 가파르다.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오르고 있다. 시장 한번 보고나면 신용카드 명세서 총액이 껑충껑충 늘어난다. 몇 명을 초대해 식당에 가서 식사하고 나면 계산서 보기가 두려울 지경이다. 그럼에도 바뀌지 않는 미국인들, 우리들의 못된 습관이 있다. 음식물 버리는 것이다. 장볼 때면 항상 너무 많이 사는 것이 문제다. 야채 과일 고기 등이 냉장고 안에 너무 오래 방치되었다가 결국은 상해서 버려지고, 통조림 파스타 식빵 치즈 등은 시한이 지나서 쓰레기통으로 직행한다. 매년 미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식품의 40%가 버려진다는 통계가 있다. 이를 사과로 치면 매년 일인당 650개, 돈으로 치면 1,300달러가 그대로 버려진다.
같은 시대를 사는 지구촌 주민으로서 공동체 의식을 가져야 하겠다. 미국 내 빈익빈 부익부도 심각하지만 국제적으로 보면 국가별 빈익빈 부익부가 날고 심해지고 있다. 미국에 사는 보통사람들은 전 세계 기준으로 볼 때 많이 가진 1%에 속한다. 세계 각 지역마다 빈곤층이 늘어나고, 솥단지에 식재료가 채워지지 못하는 이 배고픈 시기에 지구촌 시민으로서 할 일이 있다. 저들의 배고픔을 느끼는 것이다. 그들의 배고픔이 나의 배고픔으로 느껴진다면 음식물을 이전처럼 함부로 버리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게 모은 돈을 기아퇴치 기관들에 기부한다면 일석이조가 된다. 낭비의 죄도 면하고 아름다운 선업도 쌓고.
세계는 연결되어 있다. 지금 여기서 내가 사는 삶의 방식이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그것이 선한 영향이기를 바란다. 지구촌의 솥단지들이 늘 채워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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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