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의 온상이었던 70년대 뉴욕 지하철은 끝없는 그래피티와의 전쟁이었다. 지금 와서 그래피티를 정의하라고 하면, 건물 외벽이나 공공장소의 표면에 글자나 그림을 조합한 일종의 미술작품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초기에는 흑인이나 라틴 갱들의 영역 표시였다.
당시는 상대 조직의 구역을 도발하기 위해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이름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다 1970년대 후반에는 브롱스 빈민가에서 흑인과 히스패닉계 청소년들의 새로운 문화운동 전반을 가리키는 말로 변모했다. 이때부터 벽면에 스프레이로 난잡한 그래피티를 그리면서 동시에 힙합이라는 음악장르도 시작됐다.
힙합이 지금은 예술로 미화되고 있지만 당시 뉴욕 이민자들에게는 곱게 보일 수 없는 범죄의 상징이었다. 그 시절 브롱스나 브루클린, 자마이카 같은 범죄지역에서 가게를 운영했던 올드 타이머들에게는 썩 반갑지 않은 노랫가락이었을 것이다. ‘이스트 빌리지 아트(East Village Art)’는 브롱스의 유행을 이어받아 태동된 1980년대의 미술 사조였다.
그런데 이것이 후에는 브루클린의 윌리엄스버그지역 그래피티 문화로까지 번졌다.
이곳도 브루클린의 빈민가였지만 맨하탄의 살인적인 집세를 견디지 못한 젊은이들이 대거 몰려왔고, 스프레이 페인트 그래피티는 도처에 벽지처럼 도배됐다.
이런 사소한 거리의 범죄가 사회 전체 질서의 파괴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에 결국 1994년 뉴욕 시민들은 강력한 검찰총장 출신의 루돌프 줄리아니를 시장으로 뽑아주었다. 연일 계속되는 범죄 뉴스와 끊임없이 발생하는 강력 사건으로 시민들의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였다. 오죽해 뉴욕타임스가 배트맨 영화에 등장하는 악당의 소굴 고담시를 뉴욕과 같다고까지 하였을까.
줄리아니 시장은 범죄를 완전히 뿌리 뽑겠다며 범죄와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그에게는 나름 훌륭한 이론적 토대가 있었다. 이른바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s)’이었다. 이 이론은 사소한 무질서를 그대로 버려두면 갈수록 더 크게 확장돼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는 주장이다.
이는 맨하탄 연구소(Manhattan Institute)라는 싱크 탱크에서 그래피티를 청소하기 위해 이론적 틀을 연구한 결과로 전해진다. 우리말로는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과도 같은 것이다. 동네에 깨진 유리창 한 두개, 혹은 쓰레기 하나 둘을 버려져 있는 채로 놔두면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더 큰 범죄에도 무덤덤해진다는 것이다.
깨진 유리창 하나가 범죄를 확산시킨다는 이론으로 철저히 무장한 줄리아니는 그래피티와의 전면전에 나선 것이다. 그는 뉴욕 전역에서 그래피티를 지우고 각종 경범죄들을 단속했다. 그 결과 강력 범죄 발생 건수가 급격히 감소했다. 너무 획기적으로 줄어든 나머지 줄리아니는 '범죄율을 가장 많이 감소시킨 시장'으로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였다.
이제 경찰 출신의 새 시장이 뉴욕에 등장했지만 지금 뉴욕은 신 범죄와 전쟁중이다. 에릭 아담스 시장의 총기범죄와의 전쟁 선포에도 불구 지난달 총격사건은 115건으로 전년에 비해 16.2% 증가했으며, 살인, 강간, 강도 등 범죄사건도 총 9873건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36.5%나 늘어났다고 한다. 자동차 절도 사건도 50%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추세도 어쩌면 시작에 불과하지 않을까.
아담스 시장은 뉴욕시 범죄 문제에 대해 해답을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줄리아니 시장처럼 깨진 유리창 이론을 다시 적용하면 될 것이다. 일찍이 성공한 캠페인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범죄를 줄이자는 캠페인을 시작도 하기 전에 한인들에게 문제가 생길까 걱정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자’는 깨진 유리창 이론과 아주 잘 맞는 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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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