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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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없는 세상의 아름다운 소리들

2022-04-20 (수)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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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오스카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코다’는 청각장애인 가족의 이야기를 코믹하고 감동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코다’(CODA)는 청각장애인의 자녀(Children of Deaf Adults)를 뜻하는 약자로, 가족 중 유일하게 청력이 정상인 소녀가 농인가정의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꿈을 이루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에 출연한 어머니, 아버지, 오빠는 모두 진짜 청각장애인들이고, 아버지 역을 열연한 트로이 코처가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어머니 역의 말리 매틀린도 1986년 ‘작은 신의 아이들’(Children of a Lesser God)로 오스카 여자주연상을 수상했으니, 두 사람은 장애인 연기자로서 각각 남녀 최초로 오스카상 수상기록을 세운 셈이다.

이번 오스카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탄 일본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Drive My Car)에도 청각장애자가 꽤 비중 있는 역으로 나온다. 한국배우 박유림이 열연한 농인 연극배우 유나가 그녀로, 대사 한마디 없이 수어만으로 감정을 전달하며 날카롭고 섬세한 연기를 펼친다. 전체적으로 우울하고 가라앉은 분위기의 이 영화에서 박유림 혼자만이 반짝반짝 생기 넘치는 존재감을 보여주는데, 그 때문에 무명이었던 그녀는 지금 이 데뷔작으로 영화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다고 한다.


한편 지난 달 31일 디즈니 콘서트홀 부설 ‘레드캣’(Redcat) 소극장에서는 청각장애 아티스트 크리스틴 선 김(Christine Sun Kim, 42)의 퍼포먼스가 있었다. 오렌지카운티 태생의 한인 2세 선 김은 현재 독일 베를린에 거주하며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사운드 아티스트’다. 그녀는 한번도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지만, 영국 일간 가디언이 “이 시대에 소리를 가장 잘 다루는 예술가”라고 소개했을 정도로 소리를 재료로 한 독창적인 멀티미디어 예술작업을 하고 있다. 몸짓, 음표, 글, 수화를 모티프로 하여 창조하는 그녀의 드로잉, 비디오, 설치, 퍼포먼스는 청력을 가진 사람들은 생각해본 적도 없는 세계를 위트 넘치게 표현함으로써 듣는 사람과 듣지 못하는 사람 모두로부터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낸다.

바드 칼리지에서 음악과 사운드로 석사학위를 받은 선 김은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뉴욕의 모마(MoMA), 모마 PS1, 위트니 뮤지엄을 비롯해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샌프란시스코 모마, 베를린 비엔날레, 상하이 비엔날레, 사운드 라이브 토쿄 등 굴지의 예술기관에서 전시하고 공연했을 정도로 아티스트로서 대단한 위상을 쌓아왔다. 아울러 2020 수퍼보울 무대에서 미국국가 연주 때 수화통역을 맡았던 그녀는 청각장애자 커뮤니티의 대변자이고 ‘수퍼스타’이기도 하다.

이날 약 300석 되는 레드캣 소극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상당수가 수화로 대화하는 농인들이었다. 선 김은 정교하게 준비해온 프로젝션을 사용하여 빠른 속도로 무대를 쥐락펴락했는데 어찌나 재미있고 열정적인지, 한 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카리스마 넘치는 퍼포먼스였다.

그로부터 2주 후인 지난 주말에는 LA 필하모닉이 구스타보 두다멜의 지휘로 베토벤의 오페라 ‘피델리오’(Fidelio)를 공연했다. 청각장애 연극단체 ‘데프 웨스트 디어터’(Deaf West Theatre)와 함께 선보인 야심찬 공연이었다.

‘피델리오’는 베토벤이 남긴 유일한 오페라다. 베토벤은 대선배들인 핸델, 하이든, 모차르트와 마찬가지로 좋은 오페라를 쓰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하나밖에 쓰지 못했다. 이 작품에 대한 평가는 많이 엇갈린다. 그의 명성에 못 미치는 타작이라는 평과 역시나 베토벤의 음악은 위대하다는…. 그러나 일반 오페라 애호가들의 평가를 알려주는 가장 확실한 지표가 있다. 이 작품이 세계 오페라하우스에서 자주 공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피델리오’를 뉴욕 메트 오페라 공연의 스트리밍으로 보았다. 메트에서 인기 오페라들은 프로덕션이 여러개 있어서 골라 볼 수 있는데, ‘피델리오’는 2000년에 올린 프로덕션 단 한편뿐이었다. 베토벤의 오페라라고 하면 많이 공연될 거 같지만 그러지 않은 이유를 공연을 보면서 조금은 알거 같았다.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실제사건을 기초로 한 이 오페라는 일단 스토리가 어둡고 재미가 없다. 억울하게 투옥된 남편을 살리기 위해 남장을 하고 교도소로 들어간 여자와 간수들, 죄수들의 이야기다. 간혹 ‘감옥 오페라’ 혹은 ‘혁명 오페라’라고도 불리며 자유를 향한 시민혁명과 사회개혁의 태동을 그린 중요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고, 사랑과 정의의 승리라는 점에서 위대한 오페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오페라로서의 매력이 크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베토벤이 청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작곡한 ‘피델리오’를 LA 필이 데프 극단과 협연한 것은 그 자체로 놀랍고 의미있는 시도였다. 공연은 실제 가수와 수어 연기자가 쌍을 이루어 노래하고 연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디즈니홀의 무대를 변형하여 만든 스테이지에서 가수들과 합창단, 청각장애 연기자들은 혼연일체가 되어 아름다운 오페라를 완성해갔다.

지난 두달 동안 본 영화와 퍼포먼스와 오페라를 통해 데프 커뮤니티의 소리없는 아우성을 들었다. 일반사회와 동 떨어진 이들의 세계에 귀 기울이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미국에는 약 100만명의 청각장애인이 있다고 한다. 농인은 아니지만 청력에 심각한 이상을 호소하는 사람은 줄잡아 1,000만명에 달한다. 소리가 없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소리는 듣지만 소통은 안되는 사람들 사이에서 새로운 질문을 던져본다.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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