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말씀에 ‘내탓이요 내탓이로이서이다’ 라고 말씀하시지만 내 탓만은 아닐 때도 있다. 살아온 성장과정이 주는(예를 들면 부모로부터 배울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 도덕성, 기본적인 예의범절, 흔히들 말하는 매너가 결여되어있다면 그 상대 배우자로서 늦게 바로잡을 수 있는 그 어떤 노력도 마음의 상처만 가져다 줄 뿐이다.
사람은 10세가 지나면 영어 액센트가 있고 그 후에 도덕성도 다시 바로잡기 힘들어진다 한다. 자녀가 어려서 (맞벌이 부부)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서만 자라면 고집이 세어진다. (성장후도) 왜냐하면 무엇이든지 ‘No’ 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귀엽기만 하고 사랑스럽기만 할뿐 통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말에 내가 귀하게 키운 자식은 남에게 천대를 받는다 했다. 청춘남녀가 그저 행복하기만 하는 신혼시절부터 예상치도 못할 실망감 내지 사람을 잘못 본 후회로 하루도 빠짐없이 상대방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사랑은커녕 더 나아가서는 혐오스런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사람은 배워야한다. 학문도 가정교육도 배울 기회가 부족하면 책을 통해서도 산지식을 얻어야 한다. 청결하지 못한 사람은 가족은 물론이고 직장 내지 모든 주위 사람에게 극심한 피해를 주게 된다. 더 중요한 문제는 본인은 개의치 않는 점이 더 힘들게 한다는 점이다.
관상!, 곧 인상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느 유명한 관상가의 대답은 가장 좋은 관상은 심성이 착한 사람이라 했다. 말 못하고 약한 동물을 학대하고 부모를 홀대하면서 교회나 사회에서 높은 직책을 가진 사람은 이중성을 지닌 자다. 관상 아닌 인상이 그대로 실루엣처럼 비추어질 것은 자명한일이다.
공공장소에서 핸드폰으로 30분씩 큰소리로 떠드는 사람, 허세와 자존심이 자녀 결혼에 얼마나 지장을 줄지 생각하지 않는 부모, 남의 성공에 축하보다 먼저 시기부터 하는 사람, 한국사람이 고쳐야 할 점은 시기와 질투라 생각한다.
그 점은 바로 열등감의 발로가 가져다주는 패배의식이라 생각한다. 뿌리 자체를 고쳐 학문이든 기술이든 자신보다 뛰어나면 인정하고 고개 숙여 배워야한다.
배우자를 선택시 아마추어가 가진 외눈박이 시야는 자칫 실수할 수 있다.
예로, 처음 강단에 선 목사님은 까맣게 머리만 보인다고 한다. 10년이 지나면 손 밑에서 장난하는 모습까지도 다 훤히 보여진다고 하신다.
같은 예로 소아과 의사 선택시 경험이 많은 선생님을 만나야 한다고 했다. 그것은 이론만으로 할 수 없는 오랜 경험만이 정확한 판단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어든지, 외눈박이 눈으로 배우자를 택하지 말아야 한다. 정확한 진단을 받기위해서는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 시간은 금이며 사계절의 꽃도 그 시절에 맞게 피어야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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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헬렌/뉴저지 팰팍 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