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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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 - ‘한미동맹’ 강화를 기대하며…

2022-04-13 (수) 하세종/뉴욕주 미한국전 참전용사 총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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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 조약은 한국전 휴전 1953년 7월 27일 직후 10월 1일에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향후 한반도에서 6.25 라는 참사를 적극 방지 방어하기 위한 조약이다. 이 조약이 가조인 되던 8월 8일 달라스 미 국무부 장관은 ”이 조약은 우리 청년병사들의 피와 동시에 함께 희생한 대한민국 장병으로 봉인되었다” 며 조약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한편, 바로 그 다음날 이승만 대통령은 “오늘날 미국과 상호 방위조약이 성립된 것은 1882년 조미통상조약 이후로 우리나라 독립 역사상에 가장 긴중(緊重)한 진전이다. 이제 한미 방위조약이 채결 되었으므로 우리 후손들이 향후 누대에 걸쳐 이 조약으로 말미암아 경제, 건설, 과학, 문화, 교육 및 체육 분야에서 갖가지 혜택을 누릴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1956년 필자의 대학 유학시절 하와이를 포함, 전 미주에 불과 2,000여 명에 불과한 한인들이 오늘날 250만 인구로 대폭 늘어났으며 한인사회도 성장했다. 주류사회를 살펴보면 한국계 정치인이 연방 및 지방 정부의 상·하 의원에 입문하여 현지 한인사회의 위상은 물론, 우리의 자랑이 되고 있다. 이는 1953년 10월 1일에 체결된 한미동맹이 근원이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인생 가치관과 대한민국 미래를 위한 전망 포부 이념에 의한 한미동맹임을 재삼 인식하는 가운데 앞으로 취임할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의 ‘국민 과업과 함께 소통하는 정권실행’ 중 한미동맹 강화책에 실한 협조가 되기를 바라는 바다.

6.25 휴전과 아울러 한미동맹 체결에 이르는 과정에 앞서 미군장성들의 용감한 희생을 살펴보고자 한다. 본인은 뉴욕주 미 한국전참전용사 총협 수석 부회장으로서 6.25 당시를 회고해 본다.

미 장성들의 희생자는 어느 세계전쟁에서도 볼 수 없는 142명이다. 이들 중 전사, 부상자가 25%인 35명이었다. 이는 국군사병들의 사상율보다 두 배나 높다.

불행히도 한국군 스리쿼터 (중형군용 트럭) 에 받혀 사망한 당시 61세 워커 중장 8군사령관은 대한민국 몰락의 기로에서 끝까지 낙동강 교두보를 사수 지휘한 가운데 맥아더 사령관이 인천 상륙작전을 준비 할 수 있도록 한 용감한 장성이다.

이어, 한국전 최초로 참전한 미 24사단장 딘 소장은 대전사수전투에서 지휘하던 부대의 전투 낙오로 민가에 잠시 잠복한 과정에 민간 고발로 생포되었다. 한편, 9군단장 무어 소장은 1951년 초 반격 작전 중 탑승한 헬기의 추락 사건의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이미 잘 알려진 밴플리트 8군사령관 아들은 전투조종사로 전사한 한편, 수많은 대학생들도 참전 전사했는데 이 중, 명문 하버드 대학 졸업생 중 17명이 한국전에서 전사하였다.

‘자유는 그저 얻지 못한다 (Freedom Is Not Free!)라는 구호 하의 저물어가는 석양길 황혼의 노병의 평생 희망과 기대는 철두천명한 혈맹, 한미동맹하의 한반도 자유민주주의 평화다. 이에 실망하지 않고 망각하지 않도록 신정부는 전념하기를 윤석열 차기대통령께 당부 한다.

<하세종/뉴욕주 미한국전 참전용사 총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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