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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들고 달려온 격동의 40년 한인섭 전 VOA 국장의 취재파일⑳

2022-04-1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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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클 잭슨을 좋아한 북한 외교관 한성렬

뉴욕에 있는 유엔주재 북한대표부에서 20여년 동안 대미창구 (對美窓口)로 활약한 한성렬 외무성 부상(副相 = 차관)이 함경남도 검덕 광산에서 “사상교육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더니 최근에는 그가 반역죄로 총살형을 당했다고 복수의 언론들이 전했다.
필자가 한성렬 부상을 처음 만난 것은 그가 1993년 조선군축평화연구소 연구원이란 직함을 가지고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였다. 당시 그의 일행은 필자의 안내로 미국의 소리를 방문해 방송국 시설을 돌아보았다.

그 후 참사관으로 유엔주재 북한대표부에서 근무하다가 귀국했고 2002년에 차석대사로 뉴욕에 복귀하면서 우리의 친분관계는 더욱 돈독해졌다. 2006년 가을 평양으로 돌아가기까지 근 5년동안 뉴욕에 근무하면서 필자와는 각별한 업무관계를 맺어 왔다.
2003년에 미국의 소리 한국어 방송이 웹사이트를 통해 영어강좌 CD 세트를 무료로 배포할 테니 신청하라고 광고했을 때 두 시간도 못 되어 제일 먼저 신청한 사람이 한성렬 차석대사였다. 1년 뒤에 CD를 두 세트씩 더 보내달라며 한 세트는 외무성 직원 영어교육용으로, 또 한 세트는 평양 외국어대학에 보내겠다고 밝혔다. 2006년 초에는 “새해에도 좋은 일을 계속 많이 하시기 바란다” 면서 Selin Dion, Michael Jackson 등 미국 음악CD들을 자기 집으로 보내 달라고 주소를 적은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한성렬 차석대사는 2005년 10월 27일 워싱턴 미 국회 하원 건물에서 열린 한미연구소 주최 심포지엄에 초청연사로 참석해 ‘한반도 평화의 길’이라는 주제로 연설했다.
다음날 아침 필자는 한성렬 차석대사가 묵고 있던 Washington Hilton Hotel 식당에서 단 둘이 만났다. 북한사람들은 외부인과 만날 때 의례히 두 사람이 함께 다니지만 그날 함께 나왔던 북한사람이 볼 일을 본다며 자리를 떠서 우리는 단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한성렬 차석대사는 북한에서는 특히 지방 사람들이 미국의 소리와 자유아시아 방송을 많이 듣고 있는데 전파방해가 평양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소리 방송 시간을 늘려서 미국의 문화, 영어강좌, 시장경제, 법의 통치와 같은 프로그램을 많이 방송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김정일 위원장과의 회견을 주선해줄 수 있느냐고 하자 그는 김 위원장 주변 사람들이 흔히 뇌물을 바라며 장벽을 쌓아 그를 외부세계로부터 차단시켜 놓았다고 말했다.
한 차석대사는 필자에게 많이 젊어 보이는데 비결이 무엇인가 물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주님과 구세주로 영접하고 믿으면 어떤 경우에도 주님이 지켜주신다는 확신이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고 젊게 해준다고 답해주었다. 아침식사가 나와서 기도해도 되겠느냐 물으니 기도하라고 하여 필자는 그의 건강과 하는 일을 주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잘 감당케 해 달라고 기도했다.

이날의 조찬회동을 계기로 필자는 한성렬이 북한에서 보기 드물게 개방적인 합리주의자라는 확신을 더욱 굳히게 되었고 그의 망명 가능성까지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David Jackson 총 국장(최고 지도자)등 미국의 소리 상부층은 나의 판단에 일정부분 동의하면서도 미국의 소리가 망명을 다루는 기관이 아닌데 그의 망명을 추진해 성사되어 기자회견이나 회고록에서 한인섭의 이름이 거론되면 미국의 소리는 보도기관으로서의 공신력을 잃게 된다며 필자의 망명추진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한때 흥분과 소명감으로 필자를 들뜨게 했던 한성렬 미국 망명 가능성은 물거품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제 그의 총살형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깝고 애석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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