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종언’이란 책이 있다. 1992년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펴낸 이 책의 내용은 어떤 정치 체제와 경제 제도가 가장 우수한가에 관한 논쟁은 역사적 경험을 통해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로 결론났으며 앞으로의 역사는 이 두 체제의 승리로 귀결될 것이란 것이었다.
당시 세계는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동유럽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소련 연방마저 해체된 상태였으며 한국에서 남미까지 민주화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렸던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그 후 진행된 30년간의 역사는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그의 낙관론을 처음 뒤흔든 것은 2001년의 9/11 사태다. 공산주의/ 민주주의, 통제 경제/ 시장 경제간의 싸움은 끝났을 지 모르지만 극단적 이슬람으로 무장된 종교적 갈등은 그 틈을 뚫고 피어오르고 있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새뮤얼 헌팅턴은 이를 ‘문명의 충돌’이라 불렀다.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의 승리가 불가역적이 아님을 더 분명히 보여준 것은 중국과 러시아의 부상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중국이 경제 성장을 계속한다면 새롭게 생겨난 중산층은 경제적 자유와 함께 정치적 권리를 요구할 것이며 중국은 과거 다른 권위주의 국가가 그랬던 것처럼 국민이 집권자를 선택하는 민주화 과정을 밟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 30년간 중국은 급속한 경제적 성장을 했음에도 정치적 통제는 더 심해졌다. 신장과 티벳의 인권 유린은 악화했고 홍콩과 한 ‘1국 2체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소련 해체 후 한 때 내일 먹을 거리도 없던 러시아인들은 푸틴이 집권하면서 경제는 꾸준히 성장해 갔지만 정치적 자유는 위축됐다. 푸틴에 반대하는 정치인이나 언론인은 암살되기 일쑤였고 그의 측근들은 ‘노멘클라투라’라 불리는 신 특권층으로 부상하며 국부를 독차지했다. 푸틴은 구 소련 제국의 부활을 꿈꾸며 체첸과 조지아를 침공하고 크림 반도를 합병하는 등 침략 전쟁을 일삼았고 그 때마다 그의 인기는 올라갔다. 그 당연한 귀결이 이번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이다.
후쿠야마가 태어나기 훨씬 전 이미 그의 주장을 반박한 사람이 있다. 아테네의 장군이었던 투키디데스다. 기원전 431년 전 아테네와 스파르타간의 전쟁이 벌어지자 그는 이것이 당대의 가장 중요한 사건일뿐 아니라 영구적으로 보존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고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이것이 인류 최초의 ‘과학적 역사서’로 불리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다.
아테네 제국의 지속적인 성장에 위협을 느낀 스파르타가 이를 견제하기 위해 일으킨 전쟁으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이 전쟁의 발단은 당시 그리스의 변방 코시라와 포티데아에서 시작된다. 이 작은 도시 국가간의 분쟁에 동맹 관계가 얽히면서 결국은 그리스 전체가 전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게 되는 것이다. 제1차 대전이 유럽의 변방 세르비아와 제2차 대전이 폴란드에서 시작된 것과 흡사하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압권은 ‘멜로스 인과의 대화’라는 부분이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있는 군사적 요충인 이 섬 주민들은 분쟁에 개입하고 싶지 않다며 중립을 외치지만 아테네 대사는 아테네 편에 서거나 항복할 것을 요구하며 “강자는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약자는 당해야 하는 것을 당하는 것”은 오래된 세상의 법칙이며 자신들은 오직 이에 따를 뿐이라고 말한다. 멜로스인들은 신과 정의가 자신 편이라며 결사항전을 해 보지만 결과는 패배로 성인 남성은 모두 살해당하고 여성과 아이들은 노예로 팔려간다.
당시 아테네는 세계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로 시장 경제를 갖고 있었고 스파르타는 전체주의 국가로 경제를 비롯한 모든 분야를 통제했지만 막상 전쟁이 벌어지자 두 나라의 행태는 별 차이가 없었고 전쟁은 결국 힘이 센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났다. 국가의 이익이 걸린 상황에서 정의와 평화 같은 고상한 이념은 설 자리가 없음을 보여준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보다 강한 무기와 의지를 가진 쪽이 이길 것이며 그 결과가 많은 것을 좌우할 것이란 점이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지금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무기, 무기, 무기”라고 외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만약 푸틴이 이길 경우 유럽 전체가 그의 영향권에 들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중국은 타이완 무력 정복에 박차를 가할 가능성이 크다. 인구 1억5,000만의 러시아가 4,000만의 우크라이나를 집어삼킬 수 있다면 인구 13억의 중국이 2,000만의 타이완을 먹는 것은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세계는 힘 센 놈이 약한 놈을 병탄하는 오래된 역사의 귀환을 보게 될 것이다. 세계인 누구도 우크라이나 사태에 무심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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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