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흥진의 Hollywood Interview - 우크라이나 출신 유명 피아니스트 안나 페도로바
우크라이나 출신 유명 피아니스트 안나 페도로바
구 소련 치하 우크라이나의 키이우에서 태어난 유명 피아니스트 안나 페도로바(32)를 영상 인터뷰했다. 현재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살고 있는 페도로바는 7세 때 우크라이나 내셔널 필하모닉 소사이어티에서의 연주를 통해 공식 음악계에 데뷔한 이래 전 세계의 유명 교향약단과 협연을 하고 또 유명 음악제에서 연주를 하고 있다. 페도로바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자신의 연주회를 조국을 돕는 자선연주회로 바꿔 연주하고 있는데 지난 3월 6일 암스테르담의 로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와 협연해 모은 10여만 유로(자신의 연주사례비를 포함)를 이 자선기금으로 기부했다. 페도로바는 앞으로 있을 세계 순회 연주회도 가능한대로 자선기금 모금 연주회로 열 예정이다. 페도로바의 이 같은 연주회에는 러시아인으로 푸틴의 침략행위를 비판하는 여류 첼리스트 마야 프리드만이 동참하고 있다. 페도로바의 부모도 모두 음악가이자 음악교수이기도 하다. 페도로바는 우크라이나를 탈출한 자기 어머니의 제자를 수용한 암스테르담의 한 음악가의 집에서 인터뷰에 응했다. 페도로바는 질문에 진지한 태도로 대답을 하면서도 피아노의 맑은 소리처럼 미소와 함께 밝은 표정을 보여주었다.
로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안나 페도로바.
-당신의 연주회를 우크라이나를 위한 자선기금 모금 연주회로 열기로 한 동기는.
“조국이 침공당한 뉴스를 접하면서 나와 같이 조국에 가족과 친지를 둔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다행히 키이우에 살던 나의 부모는 러시아가 조국을 침공하기 직전에 암스테르담으로 왔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동포를 도와야 하겠다고 결심하고 자선기금을 모금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음악을 통해 동포들에게 감정적으로 또 도덕적으로 응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생각에 동감하는 러시아인 첼리스트 마야 프리드만과 나의 매니저와 함께 자선기금 모금 연주회를 조직하기로 했다. 이어 암스테르담의 콘서트헤보우의 감독과 접촉, 연주회장을 무료로 대관하고 직원들의 봉사료도 안 받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연주회 발표 30시간 안에 표가 매진됐고 10여만 유로가 모금됐다. 연주회에는 네덜란드의 최고 음악가들과 함께 세계 각처에서 음악가들이 동참했다. 모두가 한 마음이 된 가슴 훈훈한 일이다. 그리고 러시아군의 포격을 피해 지하에 피신한 우리들의 친구들로부터 그들이 우리 연주회를 동영상으로 보면서 울었다는 전달을 받았다. 나는 앞으로도 마드리드와 독일 및 로테르담에서 열릴 연주회를 자선기금 모금 연주회로 열 예정이다. 여기에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들이 참가할 것이다.”
-러시아인 음악가들의 작품을 보이콧하는 사태를 어떻게 보는지.
“앞으로 내 연주곡목에는 동포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작곡가이기도한 내 아버지의 작품을 비롯해 우크라이나 음악가들의 작품을 많이 포함시키겠지만 난 결코 러시아 음악가들의 작품을 보이콧하지는 않을 것이다. 라흐마니노프와 차이콥스키 및 쇼스타코비치 같은 작곡가들은 다 압제정권의 피해자들이다. 현 상황과 아무 관련이 없는 러시아인 작곡가들의 작품을 보이콧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러시아 음악이 클래식 음악 문화에 미친 영향은 지대한 것이다. 그 것을 보이콧한다는 것은 큰 손실이다. 우리가 이 침략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힘과 희망을 주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이 필요하다. 그들의 음악을 배척한다는 것은 사람들 간의 증오심만 키우는 일이다. 현재도 러시아의 침략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난하면서 자선기금 모금에 동참하는 러시아인 음악가들이 적지 않다.”
-러시아에서 태어난 부친이 이번 사태를 어떻게 보는가.
“아버지는 태어난 뒤 25년을 러시아에서 살았지만 그 후 35년은 우크라이나에서 살아 두 나라를 다 조국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은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다. 연주자요 작곡가이기도 한 아버지는 나의 자선기금모금에 동참하고 있으며 또 연주회를 지휘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를 탈출한 자기 제자들에게 피난처를 마련해주는 일에도 정성을 다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의 속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의 목적이 무엇인지 헤아릴 수는 없지만 제 정신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일 수 있을지 이해난감이다. 지금 러시아는 과거 철의 장막 시대의 소련으로 복귀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 침략은 중지 되어야 한다. 난 진실로 이 침략이 세계적인 위기로까지 치닫지 않기만을 기도한다. 그리고 물론 우크라이나가 파괴되지 않고 독립을 유지하도록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이 침략은 인간성에 대한 범죄행위이다.”
-앞으로 연주할 작품들의 음악성은 어떤 것인가.
“정신을 고양시키고 희망을 주는 긍정적이요 보다 가벼운 것들이 많다. 물론 이와 함께 보다 극적이요 슬픈 곡들도 있다. 이런 곡들은 우리에게 힘과 무게와 깊이를 주고 있으며 비극적 상황 속에서 갈등하고 있는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길도 알려주고 있다. 음악은 우리를 여러 방면으로 도울 수 있다. 특히 감정적으로 더욱 그렇다.”
-위로가 필요할 때 당신이 즐겨 치는 곡들을 치는가 아니면 그 것을 떠난 음악들을 듣는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첫 주는 피아노에 손도 못 댔다. 우크라이나에 있는 사람들과 통화하고 뉴스를 보고 자선기금 모금을 조직하느라 눈코 뜰 새없이 바빴다. 그러나 그 후 연주를 시작하면서 정상으로 돌아왔다. 연주는 내게 큰 위로와 행복을 안겨주었다. 음악이야 말로 긴장을 풀어주고 정신을 고양시켜주는 것이다.”
-러시아 음악 뿐 아니라 문학을 비롯해 러시아 문화 전반에 걸쳐 보이콧하는 상황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난 그에 동의하지 않는다. 러시아 소설가와 시인과 음악가들을 비롯해 이번 사태와 아무 관계가 없는 러시아 문화 전반에 걸쳐 보이콧한다는 것에는 반대한다. 이번 사태는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바로 얼마 전에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있은 연주회에 참석했을 때 연주곡목에 있던 라흐마니노프의 곡이 쇼팽의 것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연주회장의 감독에게 물었더니 우크라이나를 위한 단결의 표시라면서 다음번에는 라흐마니노프의 곡을 연주해주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난 이런 조치가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지지하는 러시아인 음악가들의 작품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들의 음악은 결코 거부 되선 안 된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와 푸틴의 이번 침략을 지지하는 음악가들의 작품을 보이콧하는 것에 대해선 동의한다. 모든 인간은 이 같은 범죄에 대해 반대해야 한다.”
-당신의 자건기금 모금을 돕는 많은 러시아인들의 안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러시아는 해외에 있는 푸틴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암살한 전력이 있는데.
“푸틴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마야 프리드만과 함께 모금운동을 조직할 때 그에 대해 다소 염려가 됐다. 마야는 가족이 러시아에 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 그 밖에도 모금조직에 협조하는 러시아인 음악가들이 상당수 있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이들이 푸틴과 가까웠던 사이가 아니라면 그들에 대한 개인적 보복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들의 가족은 또 다른 문제다. 푸틴에 대해 반대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해외의 많은 러시아인 음악가들에 대해 진실로 존경심과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가족이 러시아에 있는데도 푸틴에 대한 반대 의견을 보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음악을 통해 세계가 함께 되도록 하는 일이 당신의 책무라고 여기는지.
“나는 음악이 실제로 우리 모두를 연결시켜 줄 수 있다고 강하게 느끼고 있다. 음악은 많은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힘을 지녔다. 음악은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의 공용어이다. 이 공용어가 전달하는 메시지야 말로 풍요롭기 짝이 없는 것이다.”
-당신이 존경하는 미국인 피아니스트는 누구인가.
“난 작고한 반 클라이번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난 특히 그의 차이콥스키와 라흐마니노프 곡의 해석을 사랑한다. 난 지금도 그가 연주하는 이 두 음악가의 피아노 협주곡을 자주 듣는다. 그리고 에마누엘 액스도 존경한다. 그는 훌륭한 피아니스트로 나는 그의 음악성과 연주를 즐겨 듣는다. 피아니스트는 아니지만 첼리스트인 요 요 마도 내가 존경하는 연주자다.“
-자선기금 모금을 조직하면서 겪은 도전은 무엇인지.
“모든 문제를 감정적으로 다뤄야하는 것이었다. 조직을 시작하면서 두 주간은 잠도 제대로 못 잤고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그리고 사람들 간에는 의견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다루는데도 힘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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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