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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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른 척한다고 있는 병이 사라지진 않는다

2022-04-06 (수) 정호윤 예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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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호윤 한방칼럼

‘병(病)은 자랑하라’는 말이 있다.
얼핏 생각하면 몸이나 정신에 불편함이 있는 것이 무슨 자랑 거리가 되겠는가
하지만, 창피한 마음에 혹은 주변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은 마음에 혼자서만 끙끙 앓다가 작은 병을 크게 키워 내원하는 환자들을 임상속에서 자주 만나다보면 이 속담에 담긴 깊은 뜻에 감탄하게 된다. 원래는 간단하게 치료가 가능했을 병을 숨기고, 치료를 미루다가 기어이 난치병으로 만들어 내원하는 환자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보기 때문이다.
자고로 병을 감추게 되면 치료법에 대한 다양한 정보도 얻기 힘들어지고, 그러다 보니 치료에 적절한 시기를 놓치기 십상이다. 그렇게 적절한 대응을 못하다 보면 병은 속절없이 깊어지는데, 이는 병이란 마치 살아있는 생명과도 같아서 치료하지 않으면 그대로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그 뿌리가 자라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겉으로 보이는 증상은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 안으로는 이미 병의 뿌리가 아주 깊숙이 박혀 있는 경우가 많다.

침 몇 번으로 나을 수도 있었는데
지난 15년 정도의 임상 경험에만 비춰봐도, 비염이나 생리통 같은 가벼운 기능성 질환은 처음 증상이 시작된 해에만 바로 치료를 시작하면 침 몇 번만으로도 완치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질병이 발병한 처음 수년을 그저 참으려고만 하다가,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이 악화되면 그제서야 내원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일단 이렇게 되면 최선의 치료 효과를 위해 침도 맞고, 탕약도 복용하고, 식이요법까지 철저하게 지키면서 치료에 임해도 최소 수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보통이다.
마찬가지로 중풍이나 와사풍(구안와사)의 경우도 처음 3개월 안에 치료를 시작한 사람과 1년이상 지나 치료를 시작한 사람의 치료율에는 어마 어마한 차이가 있는데 모두 같은 이유이다.

병은 자랑할수록 완치 기회 늘어난다
물론 아무리 이런 얘기를 들어도 병 자체가 자랑스러워질 리는 없다. 치질같은 질병은 남들에게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워 숨기고 싶고, 또 암같은 난치병은 주변 사람들이 걱정하고 불편해 할까바 그들 앞에서 입을 여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어떤 종류의 질병이라 해도 속으로 혼자 끙끙 앓는 것보다는 남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낸다는 것을 기억하자. 더욱이 모른 척한다고 있는 병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또, 치료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이렇게 ‘병을 자랑하는 습관’을 통해 우리는 개개인이 가진 좁은 식견과 지식안에서는 보이지 않던 치료의 기회를 타인을 통해 얻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병을 자랑하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외부와 소통하라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자기가 앓고 있는 병을 자꾸 언급하면서 주변에 고칠 길을 물어보아야 좋은 치료 방법이나 좋은 명의를 소개받는 기회가 오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간단한 병이 커다란 병으로 진행하거나, 다른 합병증을 일으키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가 있게 된다.
문의 (703)942-8858

<정호윤 예담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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