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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의 어머니들… 그들의 기도

2022-04-01 (금)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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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지 5주가 지났다. 전쟁의 날들만큼 사람들은 죽어가고 도시들은 파괴되고 있다. 봄은 언제나 올 것인지, 불안과 두려움 속에 그곳은 끝이 안 보이는 겨울이다.

우크라이나는 기대 이상으로 잘 싸우고 있다. 기필코 나라를 지키겠다는 국민들의 굳은 항전의지 덕분이다. 단숨에 수도 키이우를 점령하고 허수아비 정권 하나 세워 지배하려던 푸틴의 야욕은 현실과 멀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저항이 이렇게 강할 줄을, 러시아 군인들의 사기가 이렇게 낮을 줄을 그는 짐작하지 못했다.

러시아가 침공하자 우크라이나에는 두 줄기의 큰 흐름이 형성되었다. 첫째는 서쪽 국경을 넘는 대탈출의 물결. 대부분 엄마들이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노부모를 모시고 국경너머 안전한 곳으로 피난 가는 행렬이다. 폴란드, 슬로바키아 등 인접국가로 넘어간 난민이 근 400만, 국내 피난민이 600만 정도. 인구의 1/4은 유랑생활 중이다.


두 번째 흐름은 탈출행렬과 정반대인 귀국행렬. 외국에서 고국의 전쟁 소식을 듣고 황급히 귀국한 사람들이 최소 26만명(3월 중순 기준)으로 추산된다. 대부분은 참전하려는 남성들. 18세에서 60세의 건강한 남성은 나라를 위해 싸우라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탄원에 이들은 외국에서의 안전한 삶을 뒤로 하고 전쟁의 불구덩이 속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이런 대이동의 혼란 속에서 꼼짝 않고 집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어머니들이다. 아들/딸이 전쟁터에 나간 어머니들은 이웃이 모두 떠나 인적 없는 동네에서 자식 기다리며 살고 있다. 어느 전선에 있는지, 별 일은 없는지 … 불안으로 가슴은 바작바작 타들어간다. 어머니들에게 생명수같이 반가운 건 문자 메시지. 아주 가끔 전선에서 ‘나 괜찮아요’ 정도의 짧은 메시지가 온다. 그리고 나면 또 다음 메시지를 기다리며 어머니들은 버틴다.

우크라이나 서부, 코시우의 한 어머니는 수십년 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운다. 세 아들 중 둘을 전쟁터로 보낸 후 마음을 진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아들들과 작별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어머니가 붙잡을까봐, 사색이 될 어머니를 볼 용기가 없어서, 아들들은 말을 하지 못했다.

그들이 떠난 후 며느리로부터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밤새 울었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느낌, 영혼이 찢기는 아픔”이었다. 이 악몽이 언제나 끝날 건지, 아들들을 다시 볼 수는 있는 건지 … 두려움 속에 어머니는 간구하고 또 간구한다. 제발 지켜 달라고.

그의 어릴 적 친구도 외아들이 전쟁터에 나가 있다. 폴란드에서 건축 일을 하던 아들은 전쟁이 터지자 다음날 귀국하더니 이틀 후 최전선으로 떠났다. “우리가 지금 느끼는 이 고통을 세상의 어떤 어머니도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고 그 어머니는 말했다. 이어 그는 러시아 어머니들의 슬픔을 걱정했다. 그 아들들이 자신의 아들을 죽일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자식 잃는 고통만큼 세상 모든 어머니들에게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공포는 없기 때문이다.

전쟁 초기 러시아의 어머니들은 아들이 전쟁터에 가있는 줄도 몰랐다. 대부분의 러시아 병사들은 영문도 모른 채 우크라이나로 향했다. 현역병(18~27세 남성 1년간 병역의무)이거나 현역 갓 마치고 취업이 마땅치 않아 계약직 군인이 된 병사들은 ‘훈련’ 혹은 ‘특별 군사작전’이라는 말만 듣고 이동했고, 며칠 후면 돌아갈 것으로 알았다고 했다.

전쟁 직후 우크라이나 당국은 러시아군 포로와 사망자 정보를 웹사이트에 올려 러시아의 가족들이 찾아볼 수 있게 했다. 어머니가 와서 포로가 된 아들을 직접 데려가게 하기도 했다. 적국의 어머니들에 대한 선의의 제스처이자 ‘전쟁 반대, 푸틴 반대’ 여론을 부추기기 위한 심리전이기도 하다. 아들의 사망/생포 소식은 러시아 어머니들에게 청천벽력의 충격이었다.

어머니들의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본능, 제발 자식이 안전하기를 바라는 간절함은 전쟁에서 힘이 있을까. 전쟁의 경로를 바꿔놓을 수 있을까.


이스라엘에는 ‘네 명의 어머니들’이 있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성공적 풀뿌리 반전운동으로 기록된 ‘네 명의 어머니 운동’이다. 1997년 2월 레바논 남부지역으로 군인을 수송하던 이스라엘 헬기 두 대가 충돌한 사건이 발단이었다. 당시 73명의 군인이 사망했다. 이스라엘은 1982년 팔레스타인 세력을 몰아내고 기독교 민병대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레바논을 침공한 후 15년째 주둔 중이었다.

헬기 참사 직후 네 명의 어머니들이 나섰다. 아들이 군인으로 레바논에 주둔 중이던 이들은 “더 이상 우리 자식들을 죽게 할 수는 없다”는 데 뜻을 모았다. 이스라엘 군의 즉각적 레바논 철수를 요구하는 운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자식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반전 여론을 조성, 급속하게 지지 세력을 넓혔다. 드디어 2000년, 여론에 밀린 이스라엘 군은 18년간 주둔해왔던 레바논에서 철수했다.

전장에 자식을 보낸 어머니의 심정은 이 편과 저 편이 다르지 않다. 매 순간이 기도다. ‘아들/딸이 무사하기를, 전쟁이 끝나서 어서 돌아오기를’ 바라는 절절한 간구다. 어머니들의 기도가 하늘에 닿기를 바란다. 인간의 가장 큰 죄악, 전쟁은 하루속히 끝나야 한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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