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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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맛의 유혹 ‘봄동’

2022-03-22 (화) 정성모 / 워싱턴산악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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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정이월(正二月) 바람살에 검은 암소 쇠뿔이 오그라든다’는 제주도 속담처럼 절기로는 봄이지만 아직은 차가운 계절의 끝물인 3월이다. 집 뜰 한쪽에 자리 잡은 매실꽃이 따스한 햇살을 받아 피기 시작하더니 3월 초 갑작스런 추위로 잠시 주춤했다가 바로 시들어 버린다. 음력으로 정월이나 이월쯤 되면 사람들은 으레 날씨가 풀린 것으로 생각한다. 사실은 이따금씩 정월과 이월(양력 2월, 3월)의 바람살은 동지섣달(양력 12월, 1월) 못지않게 차갑다. 그리하여 ‘정이월에 간장 대독(큰 항아리) 터진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설렘과 성급한 마음으로 완연한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봄이 온다고 특별히 신나는 일도 없는데 찜통 여름을 기다리는 사람은 드물지만 누구나 따스한 봄을 기다린다. 폭설도 내리고 엄청 추웠던 때를 생각하면 봄날은 따뜻해서 좋다. 봄이 코앞에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봄동(일명 떡배추)은 흐드러진 꽃내음보다 빨리 봄의 소식을 알리는 채소이다. 봄맞이 맛의 전령은 단연코 봄동이다. 이른 봄 텃밭에서 피어나는 노랑꽃의 봄동! 집 텃밭에서 몸을 푼 봄동이 입맛을 돋우며 봄이 곁에 왔다고 손짓한다.
이른 봄 명물 봄동의 향그로움이 혀끝을 유혹한다. 제철에 나는 채소나 나물이 최고의 건강식이자 웰빙식이다. 봄동은 한겨울 매서운 추위와 된서리를 이기고 보약처럼 자란다. 겨울동안 추위에 움츠러 있는 우리의 오장육부에 활기를 불어넣기 충분한 채소이다. 봄동은 자태도 곱고 비타민 C와 칼슘이 풍부하다. 웰빙식품으로 인기 있는 채소다. 봄 향기를 마중하기에는 역시 봄동이 제격이다.

혹한의 겨울은 죽음의 계절이라고 말하지만, 지난 시월 초 집 텃밭에 파종한 봄동이 발아하여 폭설에 깊이 갇혔지만 죽지 않고 고개를 내밀고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잘 자랐다. 소한, 대한의 혹한을 이겨낸 끈질긴 생명력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 생명은 태양의 사랑과 농부의 따뜻한 손길을 받으면서 무럭무럭 자랐다.
잎사귀나 뿌리에 아직도 고향의 흙냄새가 남아 있는 신선한 푸성귀들과의 쉬운 만남은 아무래도 집 텃밭이 으뜸이다. 봄빛을 물씬 풍기는 봄동을 텃밭에서 뽑아서 새콤달콤하게 무쳐 싹싹 비벼 한입 가득 씹어 먹으면 입안에서도 파란 봄빛이 피어난다.


한국이 원산지인 ‘봄동’은 달래, 냉이 처럼 봄철의 대표적인 채소다. 추위에 강하며 햇볕 잘 드는 양지바른 밭에서 잘 자란다. 잎은 크지 않고 속이 노란색을 띠고 있다. 추운 겨울에 자라다보니 잎이 옆으로 퍼져있는 것이 특징이다.
봄을 상징하는 식품으로 크게 3가지 종류가 있다. 산과 들의 첫 새싹 봄나물처럼 ‘시작과 처음을 상징하는 식품’이 있고, 키가 무럭무럭 크는 죽순처럼 ‘미래 지향적 이미지의 식품’이 있다. 그리고 추위와 찬바람을 이겨낸 봄동처럼 ‘고난을 이겨낸 식품’이 있다.

봄에 들어서면서 나오는 봄동은 어리고 연한 배추지만 매서운 추위와 찬바람을 모질게 이겨낸 찰지고 질긴 배추이다. 인고(忍苦)의 세월을 이겨내고 경지에 이른 선비와 같다. 고소하고 맛도 있지만 봄동의 이미지 그대로 몸을 탄탄히 하고 외부의 추위와 바람을 이겨낼 힘을 주는 상징적인 남새(푸성귀)다. 알칼리성 식품으로 맛이 구수하고 향이 진하다. 국으로 끓여도 비타민 파괴가 적은 채소이다.
봄동은 겉절이, 나물 무침으로 주로 사용한다. 봄동 겉절이는 아삭아삭한 식감을 가지고 있고, 새콤하고 고소하고 단맛이 난다. 씹는 질감도 좋다. 나른한 봄철 환절기 식욕부진 때 입맛을 돋워주고 면역력을 향상시켜 주는 건강 채소이다. 봄비 오는 날에는 봄동으로 달콤하고 고소한 봄동전을 부쳐서 초간장에 찍어 상큼하게 먹기에 딱좋은 제철 식재료이다.

‘꽃샘에 설늙은이 얼어죽는다’는 춘분(春分)이 지났지만 아직 봄타령을 하기엔 좀 섣부른 감이 있는 시기이다. 봄보리 농사를 시작하는 환절기에 매일 먹는 반찬도 물리고 식욕이 없을 때 입맛을 돋워 주는 음식으로는 봄동 겉절이가 최고다. 흰밥에 봄동 겉절이, 고추장, 참기름을 넣어 슥슥 비벼 먹으면 꽃샘추위에 찾아오는 춘곤증(春困症)도 도망간다.
겨울 막바지에 눈이 내리고 그 눈 속에 파묻혀 있는 봄동을 밭에서 뽑아 얼어 붙은 눈을 탈탈 털고 국을 끓이거나 쌈을 싸먹으면 새로운 기운이 온몸으로 퍼진다. 그게 어릴 적 고향에서 가장 먼저 맞이한 봄 내음의 추억이다.

여리여리해 보이는 푸성귀이지만, 봄동에는 베타카로틴 및 여러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식이섬유가 많아 변비 예방과 갈증 해소에도 탁월하다. 봄동에 함유된 필수아미노산 성분은 체내 면역체계를 개선하여 환절기에 발생할 수 있는 감기 예방에도 효과가 좋다. 봄 환절기 신체리듬 유지에도 좋은 식재료이다.
숟가락으로 듬뿍 뜬 밥 위에 봄동겉절이를 얹어 한 입 가득히 넣어 씹어 먹으니 마음속까지 봄기운이 퍼지는 것 같다.

<정성모 / 워싱턴산악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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