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꽃에게서 배운 것/ 한 가지는/ 아무리 작은 꽃이라도/ 무릎 꿇지 않는다는 것// 타의에 의해/ 무릎 꿇어야만 할 때에도/ 고개를 꼿꼿이 쳐든다는 것/ 그래서 꽃이라는 것/ 생명이라는 것 <‘꽃은 무릎 꿇지 않는다’-우크라이나에게 바치는 시, 류시화>
깨끗하게 재단장한 LA 다운타운 뮤직센터 광장에 들어서면 두 개의 대형 LED 스크린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지난 주말 저녁 플라자에 들어섰을 때, 두 스크린은 모두 파란색과 노란색으로 양분된 우크라이나 국기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이미지가 마음 한 부분을 날카롭게 찔렀다. 지구촌 한 쪽에는 포화 속에 고통받고 신음하고 죽어가는 피난민들이 있는데, 우리는 이렇게 공연을 즐기러 다닐 수 있다는 미안함 같은 것이었다.
무거워진 마음은 공연장에서 더 커졌다. 주말이틀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에서 열린 2개의 공연을 보았는데 두 번 모두 우크라이나 국가의 연주로 시작되었다. “그들을 지지하고 고통에 연대한다”는 짧은 자막과 함께 연주가 시작되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청중은 모두 일어섰다.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신문과 영상을 통해 보아온 전쟁이미지가 겹쳐지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하필 우크라이나 국가는 왜 애달픈 단조란 말인가. 하도 곡조가 비장해서 나중에 집에 돌아와 가사를 찾아보니 이런 내용이었다.
“우크라이나의 영광과 자유는 사라지지 않으리라/ 형제들이여, 운명은 그대들에게 미소짓고 있도다/ 우리의 적들은 아침 태양의 이슬처럼 사라지리라/ 그리고 우리는 형제의 땅에 자유롭게 살게 되리라/ 우리의 자유를 위하여 우리의 몸과 영혼을 희생하자/ 그리고 우리는 카자크의 피를 이어받은 형제임을 보여주리라”
마치 작금의 비극을 예언이라도 하듯 적들로부터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몸과 영혼을 희생하자고 노래한다. 가사 대로 그들의 적, 러시아군이 아침 태양의 이슬처럼 사라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주말의 두 공연은 오랜만에 남가주를 찾아온 독일 ‘함부르크 발레’의 퍼포먼스였다. 하나는 LA뮤직센터가 주최한 ‘번스타인 댄시즈’(Bernstein Dances)였고, 다른 하나는 LA 오페라와 함께 공연한 바흐의 ‘마태수난곡’(Saint Matthew Passion)이었다.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다른 공연들이었지만 각자 다른 이유에서 크나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번스타인’은 뮤직센터가 팬데믹 이후 처음 초청한 댄스공연인 만큼 신나고 역동적인 춤과 음악이 지난 2년의 시름을 시원하게 날려 보내도록 기분을 업 시켜주었다. 레너드 번스타인의 음악들을 조각조각 이어 붙여 안무한 모자이크 같은 작품으로 ‘캔디드’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온 더 타운’ ‘피터 팬’ 등의 삽입곡들이 쉬지 않고 이어지면서 현대발레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댄서들의 기량이 워낙 뛰어난데다 조지오 아르마니가 디자인한 의상에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뮤직까지 더해져 아름답고 생기 넘치는 무대였다.
반면 ‘마태수난곡’은 예수의 고난을 노래하는 교회음악에 춤을 입힌 파격적인 무용극이다. 원래 이 오라토리오는 300년전 바흐가 성토마스교회의 성금요일 저녁미사를 위해 마태복음 26~27장의 총 141절 내용을 한 구절도 빠짐없이 악보에 옮겨 작곡한 것이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죽음을 예고하는 장면부터 대제사장들의 음모, 옥합의 향유를 붓는 여인, 유월절 성만찬,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유다의 배반과 예수의 체포, 베드로의 세 번 부인, 빌라도의 판결, 옷을 벗기고 채찍질 당한 후 십자가에 달리심, 마지막 탄식과 함께 운명할 때까지의 극적인 순간들이 합창과 솔로이스트들의 아리아,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고스란히 재연된다.
연주시간이 거의 4시간에 달하기 때문에 자주 연주되지 않는 이 어마어마한 대작을 현대발레로 재해석한 시도가 놀라웠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전통 발레가 아니라 인간본성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해부한 안무도 신선했다. 음악으로 듣는 것보다 훨씬 극적이고 영혼이 고양되는 느낌, 인간의 몸으로 절규하는 고난과 슬픔의 크기가 강렬하고 초월적이었다.
‘번스타인’과 ‘마태수난곡’을 안무한 함부르크 발레의 예술감독 존 노이마이어(John Neumeier)는 41명의 무용수 전원을 공연 내내 무대에 세우고 ‘증인’의 위치에서 수난곡의 가사를 직접 들으면서 그 느낌을 춤에 반영하도록 자율성을 부여했다고 한다. 그런데 단원의 상당수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및 그 주변국 출신이라니, 고국의 수난과 예수의 수난이 겹치는 이번 공연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절절했을까.
3월초 시작된 올해 사순절은 4월14일에 끝난다. 사순절이 끝나기 전 우크라이나의 전쟁도 끝나기를 기도한다. 그리하여 어느 해보다 예수의 수난을 깊이 경험하고 맞는 이 부활절이 더 밝고 기뻤으면 좋겠다.
‘번스타인 댄시즈’는 19일 한번 더 공연이 있고, ‘마태수난곡’은 27일까지 5회 공연이 남아있다.
<
정숙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