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흥진의 영화이야기 - 새 영화 ‘화비안: 고잉 투 더 독스’(Fabian: Going to the Dogs) ★★★★ (5개 만점)
▶ 타락·부패하고 퇴폐적인 사회 속에서 자기 위치를 찾는 남녀 3인의 이야기
도덕가인 화비안은 혼란의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면서 그 제물이 된다.
1930년대 초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 타락하고 부패하고 퇴폐적인 사회 속에서 자기 위치를 찾아 헤매는 젊은 남녀 3인의 이야기로 독일영화답게 묵중하고 심각하다. 특히 3인 중 무너져 내리는 세상사를 방관하는 작가 지망생 야콥 화비안의 눈으로 본 사회 비판 영화이자 궁극적으로 그의 사랑을 다룬 러브 스토리로 스타일과 내용이 모두 시대정신을 과감히 포착하고 있다.
에릭 캐스트너의 소설 ‘화비안: 도덕가의 이야기’가 원작으로 혼란의 역사에 휘말려든 젊고 지적인 3인의 남녀의 이야기를 분주한 카메라와 칼라 속 흑백 화면 그리고 착 가라앉은 남녀의 내레이션과 과거 속에서 현재를 깨닫게 하는 장면 및 여러 개의 화면과 기록 필름 등 기술적으로도 거의 실험영화 같이 만든 진행 속도가 빠른 준수한 영화다.
얘기는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로 세계적인 경제공황이 시작된 1929년부터 히틀러가 집권한 1933년 까지 베를린을 무대로 펼쳐진다. 1930년대 초는 독일의 도덕적 타락과 퇴폐문화가 판을 치던 때로 이와 동시에 나치즘이 득세를 하면서 정치·사회·경제적으로 혼란의 절정기를 이루던 시기.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 화스빈더의 ‘베를린 알렉산더플라츠’와 현재 Netflix를 통해 볼 수 있는 ‘베를린 바빌론’과 라이자 미넬리가 나온 영화 ‘카바레’를 연상케 한다. 그리고 ‘스타 탄생’의 플롯도 떠오른다.
드레스덴이 고향인 야콥 화비안(톰 쉴링)은 32세난 담배회사의 광고부 사원. 그는 박사학위 소유자로 작가 지망생인데 낮에는 따분한 광고문구 쓰는 일하고 밤이 되면 클럽과 사창가를 찾아다니면서 술과 마약과 여자를 즐긴다. 그가 클럽에서 만난 여자 중 특별히 부각되는 여자가 나이 먹은 부잣집 부인으로 섹스광인 이레네 몰(메렛 벡커)로 이레네는 영화 내내 나오면서 화비안에 대한 집착을 못 버린다.
화비안과 함께 베를린의 밤 문화를 즐기는 친구가 부잣집의 금발 미남 아들로 지적이요 이상적인 사회주의자 슈테판 라부데(알브레힛 슈후). 슈테판은 독일 철학가 레싱에 관한 박사논문을 제출한 뒤 통과여부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냉소적이요 세상사 참여에 무관심한 방관자이자 복잡한 내면을 지닌 도덕가인 화비안에 극적으로 대조되는 사람인데 파혼하고 논문통과에 실패하면서 비극적 종말을 맞는다.
어느 날 화비안은 클럽을 찾아 갔다가 아름답고 지적이요 총명한 코넬리아 바텐베르크(사스키아 로젠달)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코넬리아는 독립심이 강한 현대 여성인데 국제영화관계 법률학도로 배우지망생.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선 사랑도 방해가 되선 안 된다고 화비안에게 다짐한다. 그리고 둘은 뜨겁고 깊은 사랑에 빠진다.
때는 경제가 악화하고 실업자가 급증하면서 사회적 혼란이 비등할 때로 이를 이용해 나치즘이 득세를 한다. 이런 판에 화비안은 실직을 하고 코넬리아는 화비안을 사랑하면서도 영화배우로서의 자기 꿈을 이루기 위해 나이 먹은 제작자의 정부가 된다. 그리고 슈테판은 나치를 피해 지하로 잠적한다. 모든 것을 잃다 시피 한 화비안은 고향 드레스덴의 시골로 돌아간다. 그러나 그와 코넬리아 와의 사랑은 변치 않아 편지를 주고받는데 마침내 화비안이 배우로서 성공한 코넬리아를 만나기 위해 베를린을 향해 떠난다. 그리고 코넬리아는 화비안과 자주 들르던 카페에서 연인을 기다린다. 마지막 장면이 가슴을 몹시 아프게 만든다.
굉장히 비극적인 영화로 타락하고 혼란한 역사에 휘말려 희생되는 도덕가의 사랑과 그 혼란한 환경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다니는 이야기가 3시간에 걸쳐 힘차게 서술되고 있다. 쉴링과 로젠달의 연기와 호흡이 따스하고 아름답다. 그리고 슈후의 연기도 아주 좋다. 도미니크 그라프 감독(공동 각색). Royal극장(웨스트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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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