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국은 극심한 국론분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정치적 신념과 진영에 따라 두 편으로 갈린 여론과 민심의 거리는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이런 분열에 기름을 부은 것은 다름 아닌 트럼프의 ‘사기 선거’주장이었다. 트럼프의 터무니없는 선동에 동조한 그의 지지자들이 2021년 1월6일 조 바이든의 당선 승인을 막기 위해 벌인 사상 초유의 연방의사당 난입 사태는 민주주의의 본산이라는 미국의 가치를 무너뜨린 폭동이었다.
누가 봐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폭거였음에도 당리당략에 매몰된 공화당의 방해로 진상 및 책임 규명 작업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채 국론분열만 심화되고 있다. 자신의 선동을 사죄해도 모자랄 트럼프는 여전히 ‘사기 선거’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2024년 대선에 다시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정치와 관련한 국민들의 이성 작동이 갈수록 둔화되면서 이런 주장에 휩쓸리는 미국인들이 우려스러울 만큼 많다는 사실이다. 한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지지자들의 80%는 의회 난입 사태를 ‘폭동’이 아닌 ‘항의’라고 규정했다.
트럼프의 주장을 그대로 맹종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적 양극화는 지난 대선 이전에도 심각했지만 대선 후유증을 겪으면서 이제는 수습 불능의 단계로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절망감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더욱 극렬해지고 있다.
오는 9일 치러지는 한국의 대선을 앞두고 한국 역시 대선 후 국론과 민심이 한층 더 갈라지는 극심한 후유증을 겪을 것이란 암울한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선거판이 일단 마음을 정한 후보에 대해서는 ‘묻지마 지지’를 보내는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후보와 배우자 등 가족을 둘러싼 의혹과 리스크가 터져도 지지율은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후보들에 대해 도덕성 기대를 접은 것도 한 가지 이유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대부분의 표심이 이미 공고하게 ‘진영화’ 됐기 때문이다.
양극화된 정치가 선거를 지배하면서 대선은 차기 대통령을 선출하는 정치적 절차라기보다 ‘우리 편’이 이기느냐 지느냐를 가르는 진영 간의 전쟁이 돼 버렸다. 이번 대선은 후보들을 둘러싼 도덕적 논란과 네거티브 때문에 ‘최악의 비호감 선거’라고들 말한다.
그런데도 투표의향을 물어보면 80% 넘는 유권자들이 꼭 투표를 하겠다고 밝힌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응답 결과이다. 누가 좋아서라기보다 누가 너무나 싫어 투표하겠다는 혐오가 투표 동기에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런 싸움에서의 패배는 큰 상처를 남길 수밖에 없다. 가장 먼저 예상해볼 수 있는 반응은 패배한 후보와 지지자들의 ‘부정선거’ 주장이다. 만약 이번 대선에서 그런 상황이 빚어진다면 2020년 대선 이후의 미국과 같은 정치적, 사회적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벌써부터 “특정 후보에 대한 투표율을 떨어뜨리기 위해 정부가 코로나 확진자 수를 의도적으로 부풀려 발표할 수 있다”는 황당한 음모론이 나돌고 있으니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대선 후 후폭풍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런 혼란과 후유증을 최소화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패배한 후보의 깨끗한 승복과 지지자 설득이다. 고통스럽고 아쉽더라도 민주주의라는 대의를 위해 결과를 흔쾌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만약 트럼프처럼 음모론적 시각에 사로잡힌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혼란을 야기한다면 그것은 국민과 국가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