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참사다. 30개국에서 1억 명이 참가했고 민간인 포함 최대 8,500만 명이 사망했다. 어떻게 이런 비극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
제2차 대전의 시작은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부터라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시작은 1936년 독일의 라인란트 진군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독일이 베르사유 조약을 무시하고 비무장 지역에 군대를 보낸 것은 영국과 프랑스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때 이들이 강력하게 대응했더라면 훗날 히틀러가 털어놓은대로 독일은 “꼬리를 내리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고 2차 대전도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는 눈을 감았다.
이 때부터 히틀러는 서유럽 민주 국가를 우습게 보기 시작했다. 1938년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후 이번에는 체코슬로바키아에 살고 있는 독일인 보호를 구실로 주데텐 지역을 넘겨줄 것을 요구했다. 영국은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히틀러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뮌헨 협정을 통해 이를 수용한다.
그 다음 히틀러는 ‘폴란드 회랑’ 운영권을 요구했다. ‘폴란드 회랑’이란 독일과 동 프러시아 사이의 폴란드 영토로 폴란드가 발트해까지 수송로를 확보하기 위해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정받은 지역이었다. 폴란드가 이를 거부하자 독일의 침공이 시작됐다. 그제서야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고 그렇게 2차 대전은 벌어지게 된 것이다.
지난 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 침공을 감행했다. 지난 10여년간 구소련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1930년대 유럽에서 벌어진 일과 너무나 유사하다. 푸틴은 어쩌자고 이런 무자비한 도박을 벌인 것일까. 폴란드를 쳐들어간 히틀러와 비슷하다. 서방 세계에 대한 경멸과 복수심이 그 이유다.
2008년 푸틴은 구 소련의 일부였다 독립한 조지아를 침공했다. 명분은 조지아 내 압하지아와 남부 오세시아 독립주의자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조지아가 이를 진압했는데 이게 잘못이라는 것이다. 조지아는 러시아의 무력에 굴복, 이 두 지역은 독립했지만 사실상 러시아의 속국으로 남아 있다. ‘21세기 유럽 최초의 전쟁’으로 불리는 러시아-조지아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서방 각국은 아무일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재미를 본 푸틴은 2014년에는 크림 반도를 침공해 합병했으며 돈바스 일대의 친러 반군을 부추겨 이곳을 우크라이나에서 분리시켰다. 이 때도 서방은 별 대응을 하지 않았고 푸틴의 지지도는 올라갔다.
이런 일들이 쌓이면서 푸틴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이웃 나라를 쳐들어가면 별 희생 없이 러시아 영토는 늘어나고 자신의 인기는 올라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 푸틴에게 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느냐고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이 또 다시 푸틴의 승리로 끝날 지는 미지수다. 우크라이나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뿐더러 이제는 서방에서도 더 이상 밀릴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 각국이 러시아 일부 은행을 국제 금융 거래 시스템에서 축출하는 고강도 제재에 합의했고 유럽의 대표적 비둘기였던 독일마저 러시아 개스관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을 승인하는가 하면 대대적인 군비 증강을 예고하고 있다.
만약 이번에도 서방이 푸틴의 침략 행위를 묵인할 경우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는 뻔하다. 히틀러가 ‘폴란드 회랑’ 통제권을 요구한 것처럼 푸틴은 ‘칼리닌그라드 회랑’을 달라고 할 것이다. 한 때 동프러시아의 주요 도시이자 칸트의 고향 쾨니히스베르크였던 이곳은 2차 대전 후 소련 손에 넘어갔고 이름도 칼리닌그라드로 바뀌었다. 발트해 연안 유일의 러시아령 부동항이자 발트 함대 본부가 있는 이곳은 군사적 요충지지만 주위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로 둘러싸여 이들 나라 허락이 있어야 접근할 수 있다. 푸틴은 이곳을 러시아와 연결할 수 있도록 영토 할양을 요구할 것이고 이를 받아줄 경우 러시아 눈에 가시 같은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 발트해 3국은 고립되게 된다.
그뿐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역이 러시아 통제 안에 들어갈 경우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 동유럽 각국이 러시아와 사실상 직접 국경을 맞대게 된다. 동유럽 전역이 러시아 영향권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소련 해체를 20세기 최대 비극으로 보고 있는 푸틴이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2차 대전이 사상 최대 재난이 된 것은 서방 지도자들이 헛된 평화의 환상에 빠져 호미로 막을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이번 푸틴의 도박이 성공한다면 그 여파는 유럽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시진핑은 호시탐탐 노리던 대만 침공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할 것이며 한반도 정세 또한 불안정해질 것이다.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우크라이나 민중의 영웅적 항쟁에 전폭적 지원을 아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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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