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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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2022-02-28 (월) 강창구 / 사람사는 세상 워싱턴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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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일상(事故日常)’이라는 말이 있다. 날마다 좋지 않는 일이 생긴다는 말이다. 작은 식당 2개를 운영하는 필자는 양쪽 종업원을 모두 합해봐야 15명정도다. 아주 가까운 지인들마저 태연자약한 나를 아무일이 없는 줄로 안다. 마치 호수위의 백조처럼 말이다.
하지만 잔잔한 호수와는 달리 물밑은 생각보다도 더 어지럽다. 단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고 봐야 맞다. 내가 문제인지, 그들이 문제인지, 미국이 문제인지, 어떨 땐 세상이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이제는 그려려니 만성이 되어버렸다. 문제로 보면 문제이고 지나치자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도 또 내일의 태양은 뜬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거실에서 5세 아이와 놀던중 아빠가 아이에게 ‘엄마와 아빠중에서 누가 더 좋아?’ 하고 물으니 ‘아빠’, 가만히 듣고 있던 주방의 엄마가 ‘너 이리와 봐, 엄마와 아빠중에서 누가 더 좋아? ‘엄마,’ 그럼 ‘엄마가 얼마나 더 좋아?’ ‘………’ 우리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생활속의 일단이다. 교육학에서는 아동에게 이런 갈등유발적 질문을 가급적 피하라고 학습한다. 그 짧은 순간이지만 아이에게 곤란한 선택을 강요받는 스트레스가 주입되고 성격형성에 장애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게 꼭 어린아이들에게만 있을 까, 일도양단(一刀兩斷)의 사회, 한칼에 두동강내버린다는 뜻이자 어떤 숙고없이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을 말할 때 쓴다. 화끈하고 좋다. 그런데 이런 사회는 필연적으로 불안정해진다. ‘합의(合意)라는 의사 결정 과정이 생략되기 쉽다. 이걸 학습해 가는 것이 민주주의다.


그런데 말처럼 쉽지가 않아서 곳곳에서 탈이 나고 불협화음이 터지고 갈등이 생긴다. 흔하게 회자되는 집단의 ‘줄세우기, 편가르기, 흑백논리’ 등 역기능이 등장한다. 그래서 행정학이나 조직학문에서는 일찍부터 ‘갈등관리(葛藤管理)’에 대한 연구를 더욱 확대 지속해 왔다. 이게 지금은 ‘소통(疏通)’이라는 것으로 일반화 되어 조직문화로 정착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크고 작은 단체와 조직은 새해가 시작되거나 그 리더가 바뀔때마다 발전을 위한 개혁 또는 혁신이라는 아젠다를 안고 출발한다. 옳고 맞고 좋은 말이다. 국가사회도 그렇다. 그래서 항상 변화를 꾀한다.

나는 고국의 선거철만 되면 남북한 통털어 한 사람의 대통령을 뽑고, 남북한 구석구석에서 총선이 이루어지는 걸 상상해 본다. 조그만 남한땅 안에서도 선거때면 서로 갈라져서 세상인지 만상인지 모를 지경인데 거기다가 북한까지 합해 놓으면 상상불가라고 할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만약 그런 날이 오기만 한다면 선거는 훨씬 더 단순해질 것이다. 정치는 오로지 국민들만을 위한 아젠다와 이슈로 넘쳐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날이 오면 99.9% 투표율에 100% 찬성율을 자랑(?)하는 북한의 유명무실한 투표행태도 아닌, 기권 40%에 이르는 냉소적인 남한의 ‘비동의(非同意) 선거문화’를 뛰어넘어서 선거는 참으로 민주주의의 꽃과 축제의 장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내 편이 조금 더 많다고 우쭐대고, 무시하고, 이전에 서로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마주 앉아 밥먹는 것조차 서로가 꺼리게 되는 제도라면 이것은 과연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위하자는 제도일까. 이번 20대 대선을 열흘 앞두고 회자되고 있는 수많은 갈등의 분모에는 남북분단이라는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하는 바가 많기 때문에 이런 본질적인 요소를 걷어내 버리고 나면 ‘국민의 생활’ 이외에는 나머지 외교, 국방등 이슈의 차이는 아주 미미해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 국제사회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놓고 미국편에 설 것인가, 러시아편에 설것인가, 아니면 비동의 전선에 머물 것인가? 5살 어린아기에게 던져졌던 고민과 선택이 그대로 국가를 넘어 국제사회에까지 그대로 투영되고 있는 현실이 놀랍다.
이제서야 그동안 무심했던지 몰랐던지간에 우리 주변에도 ‘비동의의 세계(타인의 행위를 승인도 시인도 않는)’ 즉, 편가르는 거 싫고, 줄서기도 싫은 그런 상황이 상당히 넓고도 깊다는 걸 비로소 인정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말하면 NATO나 미국의 또는 러시아의 행위를 승인하기도 시인하기도 곤란한 것이 딱 한국의 입장인 것이다. ‘영리하게 잘해야 한다’는 것이 세계 한인동포들의 바람이자 주문이다.

톨스토이의 명작 ‘전쟁과 평화’, 영화속에 비춰진 모습은 전쟁의 포화속에서도 화려한 저택에서 연일 화려한 연회는 열리고 ‘나타샤 왈쯔’가 밤을 새워 흐른다. 전쟁의 포화속에서도 꽃은 피고 새가 날며, 구름은 흘러간다.
날아오는 미사일 포탄앞에서 비둘기 날리는 평화의 외침이 얼마나 여리고 왜소한가, 또한 만시지탄이며 절망적인가. 전쟁을 하지 않고 이기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하는 손자병법은 이미 고전이다. ‘전쟁을 하지 않는 상태를 만드는 것,’ 이것이야 말로 절묘한‘비동의(非同意)’지점 일 수도 있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이런 갈등, 즉 전쟁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나는 엄마도 싫고, 아빠도 싫다.’ 허구헌 날 다툼으로 해가 뜨고 걱정으로 해가 지는 세상은 어쩌면 사람사는 세상은 이미 아니다. 무탈한 날도 있고, 신나는 날도 있어야 당연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말인데요, ‘엄마도 좋고 아빠도 좋으면 좀 안되나요 ?’ 평화를 빕니다.

<강창구 / 사람사는 세상 워싱턴 메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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