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균형의 역학

2022-02-27 (일) 문성길 / 의사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
크게 작게
참 묘수다. 옛 소련 연방의 부활을 꿈꾸는 푸틴은 국내에서의 단단한 입지(장기집권 마련과 더불어 인기)를 무기삼고 돌아가는 국제 정세 특히 미국의 세계적 지도력의 하향도(특히 중국과의 대결)를 감지한 후 우크라이나 동부 친 러시아 두 지역을 자치공화국으로 인정 선포함으로써 군대 진입을 침략이 아니라 평화유지군 파병이라는 구실로 장식했으며 서방세계에도 선심(?)을 쓴 격이 됐다.

침략(Invasion)이 아니니 양쪽에 아무런 득이 될 수 없는 군사적 충돌은 피하고 몇 년 전에 비해 그리 실효성이 떨어지는 경제적 봉쇄인 것을 알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서방세계에 일종의 체면치레를 하게 도와준 푸틴의 책략은 아마도 KGB에서 연마한 그 어느 세계 정치 지도자들이 가지지 못한 그만의 무기일 것이다.
충실한 대리인으로 내세운 능구렁이 같은 러시아 외상에 비하면 전문 외교관 출신의 미 국무장관은 순진 바로 그것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 같은 인상이었다. 외교적 협상은 그저 장식용이었을 뿐임이 그대로 드러나지 않았던가!

CNN과 워싱턴 포스트의 칼럼니스트 자카리아(Fareed Zakaria)의 논평을 빌리지 않더라도 찰떡궁합이 아니고 은근히 경쟁과 협력 관계였던 러시아와 중국을 지금처럼 가까워지도록 한 것은 미국의 크나 큰 외교적 전략적 과오가 아닌가. 미국으로선 단결력이 부족한 NATO 동맹국들과 함께 러시아와 중국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힘든 업힐(Uphill) 싸움인 것 같아 불안하다.
일본이 말도 안 되는 어거지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에 비하면 그래도 옛 소련 연방 하에 분명히 소속되었던 우크라이나(후르시초프와 브레즈네프 공산당 서기장이 이곳 출신)가 소련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건 무리가 아닌 것 같다.


세력 균형이 확연히 비슷한 경우엔 잠잠한 것 같은 불씨 가능성들은 세력 균형이 조금이라도 삐끗해지거나 약해 눌려 지내다 상대방보다 나아지는 경우엔 틀림없이 그 불씨는 되살아남을 알 수 있음이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이며 누가 지적했듯이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발칸반도 지역까지 도미노처럼 사태가 심각해질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다. 이런 사태는 몇 년 전 크림 반도 합병 때부터 이미 예견 되었어야 할 사항이 아닌가.

여기서 간과되어서는 아니 될 사항이 하나 더 있다. 서방세계와 러시아의 완충지이며 요충지(핵 산업과 유럽의 젖줄이라는 곡창지)였던 우크라이나는 얼마 전까지 핵 보유국으로 무시못할 군사력을 가졌었으나 외부의 압력과 회유에 넘어가 핵 포기 후(1994 Budapest Memorandum: 미국, 영국, 소련연방 3국 서명으로 Belarus, Kazakhstan, Ukraine 3국 안전보장 담보로 핵 보유 해제 동의) 외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국내 정세가 계속 불안정한 불행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분명 시사점이 많은 것 같다.

“힘이 정의다”라는 말이 헛된 말이 아님을 국제 정치에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현실이 곤욕스럽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미국에게 부다페스트 각서 이행을 강력히 촉구하는가 하면 러시아는 “예전 우크라이나 정부를 위해 각서에 서명한 것이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혁명 와중에 있는 우크라이나와는 각서 서명한 적이 없다”라는 걸 보면 국가 간 약속도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게 사실이다.
역사에서 이런 일들이 되풀이되기가 일쑤임을 특히 약소국들은 명심해야할 사항이다

<문성길 / 의사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