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블라디미르 푸틴(69)은 동독에 있었다. 당시 그는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이었던 KGB(국가보안위원회) 스파이로 동독, 드레스덴에서 활동했다. 조국 소련에 대한 충성심이 확고한 30대 후반의 정보장교였다.
푸틴은 1952년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세계가 미국과 소련을 축으로 양분되었던 냉전시대, 한국에서 그 세대가 “무찌르자 공산당!”을 주입받으며 자랐듯 그는 서구 민주국가들에 대한 적대감을 주입받으며 자랐을 것이다. 1975년 레닌그라드 대학을 졸업하면서 그는 곧바로 KGB에 들어갔다. 10년 쯤 레닌그라드에서 일한 후 1985년 그는 대외 정보장교로 드레스덴 지부에 파견되었다. 겉으로는 통역사로 행세하면서, 동독 공산당 고위급 인사들과 정보국 요원들을 포섭해 첩보조직을 운영하고, 서방 군사 및 산업 기밀을 빼내는 등의 활동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때만 해도 소비에트 연방이 사라지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89년부터 분위기가 급변했다. 공산정권들이 줄줄이 무너졌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90년 동독이 해체되고, 91년 소련이 와해되었다. 초강대국이었던 소련이 국제무대에서 힘을 잃고 허망하게 무너져 내리는 것을 그는 똑똑히 지켜보았다. “소련이 병들었다는 것은 자명했다. 마비라는 치유 불가능한 병에 걸렸다. 권력 마비다”라고 푸틴은 당시 해외에서 바라 본 조국의 모습을 회고했다. 이후 서방은 러시아를 대놓고 무시했다.
거대한 조국이 인구의 거의 절반, GDP의 40여%가 떨어져나가면서 힘없는 나라로 쪼그라드는 광경을 목도하면서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때의 충격 혹은 울분이 그의 세계관 형성에 기여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동독에서 귀국 후 정계로 들어가면서 그는 구소련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야심을 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푸틴의 야심은 상당부분 러시아인들의 야심이기도 하다. 지난 12월 소련 붕괴 30주년을 맞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러시아 국민 대다수는 소비에트 연맹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막강했던 그때가 그립다는 것이다.
그런 향수, 그런 야심이 우크라이나를 희생양으로 만들었다. 푸틴이 결국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원래 하나”라며,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해 러시아 안보를 위협하려 든다”며 이런 저런 구실을 만들더니 결국 전쟁을 시작했다. 이 전쟁이 어떻게 진행될지, 얼마나 큰 인명피해로 이어질지, 세계경제에 어떤 쓰나미를 몰고 올지 … 세계는 두려움 속에 지켜보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는 2차 대전 후 최악의 전쟁이 될 수 있다는 공포감이 높다. 당사국인 우크라이나의 공포감은 오죽할 것인가.
우크라이나는 비운의 나라다. 소연방이 해체되면서 독립한 게 1991년. 제대로 된 독립국으로서의 역사가 겨우 30년이다. 그 이전 근 800년 동안 우크라이나는 나라를 갖지 못했다. 비옥한 흑토지대가 광활하게 펼쳐진 우크라이나는 유럽 최고의 곡창지대이다. 동서의 길목에 있는 금싸라기 땅을 제국들은 가만 두지 않았다.
13세기 동쪽에서 온 몽골 제국이 점령했고, 16세기 폴란드-리투아니아 제국이 서쪽에서 와서 지배했다. 이후 러시아 제국, 폴란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등이 번갈아가며 점령했다. 대륙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드네프르 강을 기준으로 서부는 주로 유럽 제국들, 동부는 수세기 동안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동부의 돈바스에서 친 러시아 성향이 강한 배경이다.
우크라이나가 가장 빛났던 시절은 10세기 전후였다. 지금의 수도인 키예프를 중심으로 9세기 초 동슬라브 족이 세운 키예프 루스가 계속 영토를 확장하며 번창했었다. 988년에는 블라디미르 1세가 그리스정교를 받아들이면서 기독교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1000년 전 이 나라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벨라루스는 모두 자국의 기원으로 삼고 있다. 푸틴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한 나라’라고 하는 근거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탄압은 잔혹했다. 1793년 우크라이나 합병 후 러시아 제국은 동화정책을 펼쳤다. 우크라이나어 사용을 금하고 러시아정교로의 개종을 압박했다. 1917년 공산혁명 후 우크라이나는 소비에트 연방에 흡수되지 않고 독립하려고 필사적으로 싸웠지만 결국 1922년 흡수되었다. 그리고는 1930년대 초 스탈린은 우크라이나 농부들을 집단농장에 강제 이주시키기 위해 인위적 기근을 조성했다. 당시 수백만명이 아사했다. 러시아에 대한 증오감이 뼛속 깊을 수밖에 없다.
이후 스탈린은 우크라이나 동부에 연고도 없고 언어도 모르는 러시아인들을 대거 이주시켰다. 이들이 모태가 되어 동부에서 친 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이 득세했다. 한데 뭉쳐도 어려울 판에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졌으니 우크라이나의 앞날은 불안하기만 하다.
우크라이나의 비극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힘 있다고 아무 나라나 쳐들어가서 짓밟고 빼앗던 제국주의, 그 야만의 시대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하겠다. 바이든 대통령이 주축이 되어 국제사회가 단호하게 대응, 푸틴의 시대착오적 야욕을 꺾어놓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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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