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밸런타인스 데이 전날 밤,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꽃을 사러갔다. 17살 아들이 여자친구에게 꽃을 주고 싶어했다. 다음날 아침 잔뜩 멋을 부린 아들은 꽃다발과 카드를 자랑스럽게 챙겨들고 차에 올랐다. 아들을 학교 앞에 내려주며 아버지는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여자친구가 꽃을 받고 어떤 반응인지 전화로 알려달라고 했다. 풋사랑에 들뜬 10대 아들의 모습이 아버지는 흐뭇하고 재미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들은 전화를 하지 않았다.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도 않았다. 아들 우아킨 올리버가 다니던 학교에서 그날 아침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퇴학당한 19세 남성이 AR-15 반자동 소총을 들고 나타나 단 6분 만에 학생 14명과 교직원 3명을 살해했다. 사상 최악의 학교 총격사건으로 기록된 플로리다, 파크랜드의 마조리 스톤먼 더글라스 고교 참사이다.
아들은 가고, 아들의 기일인 지난 14일 아침, 아버지 매뉴엘 올리버는 하늘로 올라갔다. 백악관 바로 옆에 설치된 150피트 크레인 꼭대기에 섰다. 아찔하게 높은 크레인에는 아들의 사진과 함께 “당신 통치 하에서 4만5,000명이 총기폭력으로 죽었다”고 적힌 큼직한 배너가 걸렸다. 바이든 대통령에게 총기개혁을 촉구하는 시위였다.
아들을 잃은 후 지난 4년 그는 총기규제 운동에 나섰다. 제발 더 이상은 이런 고통을 겪는 가족이 없도록 … 정치인들에게 호소하고, 백악관 앞에서 진을 치며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그는 온 세상이 다 보도록 하늘 높이 올라갔다. 그리고 체포됐다.
‘총기폭력’은 두말할 것도 없이 미국의 고질병이다. 하루 300여명, 한달이면 근 1만명, 1년이면 10여만명이 총탄에 맞는(2020년 기준 4만5,000여명 사망)데도 대책을 세우지 못한다. 인명보다 총이 우선인 나라가 미국이다. 수정헌법 2조(총기소지 권리 보장)에 대한 확신, 대를 잇는 총기 사랑, 그렇게 형성된 총 집착 문화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진 것은 전국총기협회(NRA)의 막강한 자금력. 선거 때마다 NRA가 돈줄인 정치인들은 그들의 눈 밖에 날까봐 절절맨다.
트럼프 시대가 가고 바이든이 집권하면서 총기안전 운동진영은 기대를 가졌다. 바이든은 대선 캠페인 중 파크랜드 참사 유가족들과 만나 총기폭력 예방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바이든 집권 1년이 지나도록 큰 진전은 없다. 포괄적 개혁을 시도하려하면 의회 공화당이 턱턱 막으니 대통령도 어쩔 도리가 없다.
그 사이 총기폭력은 급증했다. 팬데믹 스트레스가 겹친 2021년은 특히 심했다. 교내 총기폭력 사건을 보면 지난 5개월(지난해 8월~12월) 동안 136건이 발생, 96명이 다치고 26명이 사망했다. 사상 최고기록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갔다가 목숨을 잃는 비극을 언제까지 두고 볼 것인가.
아들 잃은 아버지가 크레인에 올라갔을 때 그 아래에서는 젊은이들이 그를 응원하며 총기규제 시위를 했다. 그중에 한 청년이 눈에 띄었다. 4년 전 파크랜드 참사에서 살아남은 학생, “우리는 아이들, 당신들은 어른. 어른이라면 뭔가를 하라”며 CNN 카메라 앞에서 분노하던 바로 그 학생, 데이빗 호그였다. 그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
이제 21살이 된 호그는 총기안전/규제 운동가로 탄탄하게 성장했다. 4년 전 사건 직후 그는 몇몇 학우들과 ‘우리 생명을 위한 행진(March For Our Lives)’이란 총기폭력 예방단체를 설립, 이를 중심으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파크랜드 4주년을 맞아 다시 CNN과 인터뷰한 그는 바이든이 총기안전 개혁에 보다 적극적일 것을 요구했다. 공화당이 입법을 막는다면 대통령 직권으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라는 것이다. 총기폭력 예방 전국부서를 신설하고 책임자를 임명하는 것 등이다.
학교 총기폭력 시대를 거친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있다. 미국에서 교내 총격이 주목받은 것은 1999년 4월 콜로라도의 콜럼바인 고교사건 때부터다. 10대 재학생 2명이 총기난사로 13명을 죽이고 자살, 15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어 2012년 12월 어린이 20명과 교직원 6명이 총격살해된 코네티컷의 샌디훅 초등학교 사건 그리고 파크랜드 사건으로 이어졌다. 참혹한 살상규모에 더해 이들 사건은 백인 중산층 지역에서 백인남성이 총기를 난사, 희생자 대부분이 백인학생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저소득 유색인종 밀집 도심지역에서 일상처럼 총성이 울리고 사상자가 생겨도 그러려니 했던 주류사회가 총기안전 문제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정치인들이 총기규제에 소극적인 이유는 정치생명 때문이다. 총기를 ‘권리’로 보는 유권자들이 ‘규제’를 주장하는 유권자보다 많으니 그들은 ‘표’ 눈치를 본다. 총기는 살상무기, 안전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면 정치인들은 태도를 바꿀 것이다.
총기안전 운동가로 성장한 데이빗은 말했다. “이제 21살입니다. 어른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뭔가를 해야 합니다.”
미국의 고질적 총기집착의 고리를 끊어내는 길은 아마도 세대교체뿐일 것 같다. 교내 총기폭력을 직간접으로 경험한 세대가 유권자가 되어 투표라는 압력으로 총기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고, 그들이 세상을 바꾸면서 역사는 이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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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