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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백 일상(日常)

2022-02-17 (목) 정성모 / 워싱턴산악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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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나열이 아름답다. 숫자 궁합이 기가 차다. 난수표 암호 문자가 아니다. 집 난방 히터가 고장 난 일자(2021. 11. 11)와 수리한 일자(2022. 02. 02)를 의미한다.
꼭 84일 걸렸다. 달(月)수로는 3개월, 햇(年)수로만 따지면 2년 걸렸다.
2021년 11월 11일 집 난방용 히터가 고장나서 에스키모 생활이 시작되었다. 기술자가 와서 확인하더니 모터가 나갔다고 한다. 새 모터를 구입하기 위하여 부품 전문상에게 전화로 문의하니 현재 재고는 없다. 일반적인 부품이 아니라 특별 주문 제작해야 하는 부품이기 때문에 언제 올지 개런티 할 수 없다고 대답한다. 겨울 내내 못올 수도 있다고 암담한 설명을 덧붙인다.

폭설까지 내리고 소한 대한 엄동설한 84일 거의 3개월 동안 난방이 안된 집에서 포터블 히터(Portable Heater)를 3개 구입하여 사용하면서 지냈다. 얼어 죽지 않고 온 식구가 겨울을 잘 버티어 냈다. 얼음 왕국에서 죽지 않고 살아난 인간승리 가족이다. 집 히터없이 지낸 겨울은 길었지만 결국 봄바람은 불어 온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공장에서 일하는 기술자가 부족해서 부품을 제대로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수십 번 전화 독촉했지만 무용지물 헛수고였다. 아랍식으로 인샬라(Inshallah: 알라의 뜻대로 하옵소서!)였다. 공장도 적기에 생산 공급을 못해서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천신만고 끝에 제작된 부품이 공장에서 뉴욕 배달 창고에 도착했다. 설상가상 강력한 열대성 저기압( Bomb Cyclone)에 의한 폭설로 인해 부품이 창고에서 일주일 동안 진퇴양난 꼼짝 못하고 있었다. 날씨마저 훼방꾼 노릇하고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했던가?
2022년 02월02일 드디어 학수고대하던 새 모터가 집에 도착하여 교체 수리 완료됐다. 모터 교체 시간은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평상시 같으면 10일 이내에 해결될 일이 정확히 84일 걸렸다. 맹추위로 일일삼추(一日三秋)인데 공장에서 통보해준 도착 예정일 보다 일주일 늦게 배달 되었다.


이제는 집안이 따뜻하니 살 것 같다. 맹추위가 오더라도 걱정이 없다. 꺼내서 입은 두툼한 실내옷도 세탁 후 원래 자리로 들어갔다. 그런데 난방이 해결되자 추위는 온데 간데 없고 겨울 날씨가 왜 이렇게 온화하지? 우리집 난방이 지구까지 따뜻하게 만드나?
또 며칠 전에는 부엌 오븐이 고장이 났다. 부품 교체 수리하는데 3주일이 걸렸다. 공장에 부품 재고가 없다. 평상시 같으면 당일, 늦어도 다음날 충분히 고칠 수 있는 일반적인 부품이다. 새 부품으로 교환하는데 걸린 시간은 5분 정도였다. 엄중한 시국에 이것저것 고장이 나서 힘들게 한다.

이 어려운 팬데믹 시국을 이해는 하지만 뭔가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강한 느낌이 든다. 사람도 혈액순환이 잘 되어야 건강하듯이 세상살이도 물 흐르듯 잘 흘러가야 하는데 뭔가 막혀있는 것 같다. 코로나19가 조기에 해결되지 않을 경우 인간 생활에 큰 재앙이 도래하지 않을까 불길한 예감마저 든다. 끓는 물속의 개구리(boiling frog)가 되어서는 안된다.
자동차 수리점하는 친구 말에 의하면, 자동차 부품 조달이 제대로 되지 않아 몇 달째 수리를 못하고 집에 차를 세워 두고 기다리는 손님도 있다고 한다. 식당 가게 장비가 고장이 나서 부품 수급 때문에 장기간 수리를 못해서 애간장을 태우고 있는 지인도 있다. 세계 1등 국가라는 미국의 현주소가 이렇다.

자동차사고 예방수칙 잘 지킨다고 사고 나지 않나? ‘치료보다 예방이 더 낫다’고 하지만, 언제 어디서 어떠한 문제가 발생할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렵고 예견할 수 없는 것이 인간사다. 사람은 건강해야 하고, 가정의 설비 등은 고장없이 잘 작동되어야 하는데 악마는 예고없이 찾아오듯 갑자기 문제가 발생하면 제 때 해결이 불확실해서 불안하다. 나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 같다.
첨단 산업이 발달한 나라라고 떠들면 뭐하나. 민초들은 일상생활에서 고통을 받고 피로감은 눈처럼 쌓이는데… 코로나19 때문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하소연도 못하고 생활해야 하니 기가 찰 세상이다.
그러나 걱정말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정성모 / 워싱턴산악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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