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워카’로 불리던 군화는 신고 벗기가 번거롭다. 허리를 구부려 한동안 끈 작업을 해야 신거나 벗을 수 있다. 지퍼를 달면 편할 것이다. 쭉 올리거나 내리면 된다.
지금은 없어진 전투경찰은 고참병이 되면 군화에 지퍼를 달곤 했다. 원래 하면 안 되는 일이다. 지급받은 군수품은 변형할 수 없게 되어 있다. 하지만 당시 내무부 소속이던 전경은 국방부 소속 군인 보다 군기가 헐렁했다. 고참이 되면 군화의 옆이나 앞을 자르고 거기 지퍼를 달곤 했다. 전경대 근처에 있는 구두 수선소에 가면 솜씨 좋은 구두방 아저씨들이 쉽게 지퍼를 달아 줬다. “육군이라면 장군 정도는 돼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남자들이 군대 가서, 축구하는 이야기’를 하면 같이 있는 사람들이 질색이라는 우스개 말이 있었다. 영양가 없는 그들만의 세계가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새삼 ‘워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얼마 전에 들었던 한국 뉴스 때문이다. 이제 군인들에게 지퍼 키트를 지급해 군화를 쉽게 벗고 신을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함께 나온 뉴스 중에는 전방과 산간 경계 근무로에 미끄럼 방지 매트를 설치하겠다는 것도 있었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안전사고에 취약하고, 지면이 좋지 않아 넘어질 위험이 많다는 것 등을 이유로 들었다.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이 구박을 받긴 하나 이쯤 되면 “대한민국 군대 참 좋아졌다”는 말이 절로 나올 만하다. 군대가 원래 위험한 곳인데 위험하다며 전방 철책선 앞에 매트를 깔아 주겠다니. 더 놀라운 것은 이게 대통령 선거 공약의 하나라는 것이었다. 20대 남성 유권자, 이른바 이대남을 겨냥해 ‘심쿵 약속’이라는 이름 아래 발표됐다.
또 다른 대선 후보는 “중고차 걱정없이 사고팔 수 있게 하겠다”를 공약의 하나로 발표했다. “내 돈 내고 내 차 사는 데 사기당할 걱정부터 해야 하는 현실을 바로잡겠다”는 말과 함께. 생활 밀착형 공약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한 나라의 대통령 선거 공약치고는 너무 사소하지 않은가. 군화를 신고 벗기 편하게 하고, 중고차를 속지 않고 사게 하는 일이 꼭 대통령이 돼야 할 수 있는 일들인가.
이런 공약들이 주요 언론을 통해 별다른 논평없이 보도되니 국민 중에는 차라리 또 다른 대선 후보가 말하는 ‘통 큰 공약’에 더 관심이 갈 수도 있겠다. “대통령 당선시 2개월이내 전국민(18세이상) 1억원 지급”이라는 약속이 곧 그것이다. 여기에 더해 평생 매달 150만원씩을 지급하겠다고 한다. 만약 이 후보가 당선된다면 2달안에 1억150만원, 미국 돈으로 근 10만달러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법원에 의해 ‘차별받는 게 합당한 후보’로 판정됐다. 그는 주요 대선 후보 방송 토론회에 초청받지 못하자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며 반발했으나 법원은 이를 “합리적인 차별”로 판결했다. 그가 다른 주요 후보들과 함께 방송에 출연하지 못한다고 해서 국민의 알 권리가 침해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등을 이유로 들었다. ‘당선시 1억원’ 공약은 몰라도 되는 것으로 판사가 선제적으로 판단했다고 할 수 있겠다.
한국 대통령 선거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으로 3주 후면 차기 대통령이 결정된다. 이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 유권자 등록을 마친 재외 유권자는 전 세계적으로 22만여명. 미국 전체로는 5만여명, 남가주 등 LA 총영사관 관할 지역에서도 1만명이상이다.
재외선거는 다음 주 23일부터 28일까지, 한국보다 2주 정도 먼저 실시된다. 투표함이 한국으로 운반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박빙 선거라면 재외 유권자의 표심도 당락에 무시할 수 없는 요소가 될 수 있겠으나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것 같지는 같다. 한국서는 ‘워카 공약’에 ‘중고차 공약’도 나오고 있는 반면, 해외 유권자에 특별히 공을 들인 공약은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옳은 판단일 지 모른다. 라스베가스 거주자가 투표하려면 부러 LA까지 달려와야 하는 게 이번 선거니까.
누구를 찍을까. “차라리 국가 혁명당-“ 하는 소리도 들린다. ‘당선되면 1억’ 약속을 한 혁명적인 정당이기 때문이다. 당선돼도 재외 국민이라고 주지 않는다면? 그 때는 헌법 소원을 제기하면 된다. 차별을 이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