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오스카상에서 3개 부문(주연여우, 조연여우, 각색)에 후보지명된 영화 ‘잃어버린 딸’(The Lost Daughter)은 여성과 모성을 깊이 들여다본 심리드라마이다.
휴가차 그리스 해변마을을 찾은 중년의 대학교수 레다, 어린 딸을 데리고 힘들어하는 젊은 여인을 지켜보면서 오래전 자신의 트라우마를 떠올린다. 커리어가 한창인데 끊임없이 칭얼대며 들러붙는 두 딸에게 지쳐 집을 떠났었다. 그리고 3년 만에 다시 돌아가지만 그 일탈의 죄책감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한다.
아이를 키우며 직업을 가졌던 여성이라면 영화에서 자신의 모습들을 언뜻언뜻 보게 될 것이다. 때로는 사투와 같았던 육아, 어머니들만이 짊어지는 그 무거운 짐을 화면에 섬세하게 풀어헤친 매기 질렌할 감독(각색 겸)과 올리비아 콜맨(레다), 제시 버클리(젊은 레다)가 모두 오스카 후보에 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넷플릭스 상영 중)
결혼을 할까 말까, 아이를 가질까 말까, 망설이는 젊은이들이 많다. 애들이 결혼할 생각을 안 한다든지, 손주 기다리는데 영 소식이 없다는 소리를 주변에서 자주 듣는다. 이런 추세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퓨리서치의 센서스 분석에 따르면 25~50세 미국성인 중 미혼자의 비율은 1970년 9%이던 것이 1990년에 20%, 2019년에는 38%로 불어났다. 앞으로 자녀를 가질 계획이 없다는 사람도 갈수록 늘어나서 작년 10월 18∼49세 남녀 3,866명의 설문조사에서는 무려 44%가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답했다. 젊은 인구 거의 절반에 달한다.
가장 큰 이유는 치솟는 양육비의 부담이고, 기후변화의 우려, 정치사회적 불안이 뒤를 잇는다. 그런데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육아의 고된 육체적 심리적 부담’을 꺼리는 여성들이 많아졌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과거 무조건 결혼해야했고 아이를 낳아야했던 여성들이 교육수준과 경제력이 상승하고 사회적 위치가 달라짐에 따라 결혼도 출산도 ‘선택’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인구증가율은 바닥을 치고 있다. 지난 1년간의 증가율은 0.1%, 인구조사국이 집계를 시작한 1900년 이래 최저치의 기록이다. 코비드-19 때문에 사망자가 늘었고, 젊은이들은 출산을 미뤘고, 이민이 감소한 것 등이 그 원인들로 꼽힌다. 하지만 팬데믹이 끝난다 해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인구 감소는 세계적인 추세다. 한국 일본 중국 인도 캐나다 독일 할 것 없이 모두 출산율 하락과 함께 인구 감소를 겪고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미국의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인구는 바로 국력이다. 일하는 사람이 많아야 생산성, 경제력, 기술력, 군사력이 높아지고, 인구가 많아야 인재가 태어날 확률도 높아진다. 로또 살 때 1장 사는 것보다 100장을 사면 당첨확률이 높아지는 것처럼 아기도 많이 낳아야 그중에서 천재가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 인재가 많으면 연구와 혁신이 더 많이 이루어지고,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핵심적인 파워가 된다.
현재 우주시장을 놓고 경쟁 중인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와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도 인구 문제에 관해서만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여섯 자녀의 아버지인 머스크는 작년 말 한 CEO행사에서 “급격히 감소하는 출산율이 인류 최대위협”이라며 “인구가 충분하지 않다. 사람들이 더 많은 아이를 갖지 않는다면 문명은 무너질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달에 인류의 전초기지를 만들려하는 베조스는 “에너지위기가 닥친 지구를 떠나 태양계로 뻗어나가면 인구가 100배 이상 늘어날 수 있고, 태양계는 1,000명의 아인슈타인과 1,000명의 모차르트를 포함한 1조명의 지구인을 쉽게 먹여 살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아이를 안 낳으려하고, 아직 우주로 뻗어나갈 실력은 안 되고, 노령화사회의 비용과 대가는 갈수록 커져만 가는 상황에서 미국은 어떻게 해야 세계 최강국으로서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가장 손쉬운 해결책은 이민 문호를 활짝 여는 것이다. 해외로부터 이민과 난민을 더 많이 받아들여 인구를 늘리는 것이다. 세계 각지에서 난민이 쏟아져 나오는 지금, 생존을 위해 목숨 걸고 떠도는 난민들을 가능한 한 많이 받아들이는 것은 인도적 차원에서도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미국은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트럼프 행정부 4년, 코로나 팬데믹 2년을 지나면서 이민은 크게 줄었다. 센서스국 자료에 의하면 2021년 이민 온 사람은 24만5,000여 명으로 전년보다 48.7%나 줄었다. 2016년의 100만명에 비하면 4분의 1 수준이다.
지난 4일 연방하원에서 ‘한국인 전용 전문직 취업비자’ 법안이 통과됐다는 낭보가 들려왔다. 한국의 전문직 인력에게 매년 1만5,000개의 취업비자를 별도 발급하는 이 법안이 상원의 관문을 넘는다면 미국의 정보기술(IT), 엔지니어링, 수학, 물리학, 사회과학, 생명공학, 의학 등의 분야에 큰 힘이 더해질 것이다.
미국은 이민으로 세워진 나라다. 더 많은 다양한 인종의 이민자들이 미국 땅을 밟게 되면 국력의 신장은 물론 미국의 고질병 인종차별도 점차 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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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