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치적 중 하나는 9.11 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해 제거한 것이다. 역사상 가장 높은 현상금(5,000만달러)이 걸렸던 21세기 최악의 테러리스트 빈라덴은 10년 동안이나 미군의 추적을 피해 다니며 알 카에다를 지휘했으나 2011년 5월 미해군 특수부대(네이비실) 정예요원들에 의해 사살되었다.
‘넵튠의 창’(Neptune Spear)이라 불린 빈라덴 제거작전을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자서전 ‘약속의 땅’의 마지막 장에서 30페이지에 걸쳐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은신처 추적과정, 극비리에 이루어진 작전준비, 그리고 마침내 작전개시를 승인한 후 성공하기까지의 순간들이 너무도 생생하고 긴박감 넘치게 묘사돼있어 읽을 때마다 손에 땀이 나고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오바마는 2002년 연방 상원위원 선거에 출마했을 때, 또 2007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때 같은 공약을 내걸었다. 부시 행정부가 일으킨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면서 그보다는 9.11의 원흉인 빈라덴 제거가 우선이니 대통령이 되면 그를 잡겠노라는 것이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그 약속을 쇼로 치부했고, 대외정책에 문외한인 신참이 센 척하려는 수작이라고 여겼다”고 그는 술회한다. 하지만 취임 4개월 후인 2009년 5월, 오바마는 소수의 측근을 불러놓고 “빈라덴 사냥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싶으니 30일마다 상황진척 보고서를 내 책상에 올려달라”고 당부했다.
다음해 9월 CIA는 수천 조각의 정보를 취합하고 분석하여 빈라덴의 소재를 추적해냈다. 외딴 지역에 은신해있으리라는 추측과 달리 그는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 인근의 부촌 내 거대한 복합저택에 살고 있었다. 몇 달 간의 탐정수사와 항공감시 결과, 유난히 담장이 높고 경계가 삼엄한 그 주택의 거주자들은 유선전화나 인터넷을 전혀 쓰지 않았고, 밖으로 나오는 일도 없었으며, 쓰레기조차 안에서 소각했다. 그리고 매일 같은 시간에 키 큰 남자(빈라덴 193cm)가 담장 안의 정원에서 원을 그리며 걷는 모습이 관찰됐다.
그가 정말 빈라덴인지에 대해 수없는 추측과 의심이 오가는 동안 습격작전의 구상이 시작된다. 미사일로 저택을 파괴해버리면 미군의 희생 없이 그를 잡을 수 있지만 빈라덴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을뿐더러 주변의 주택들도 초토화될 것이었다. 그래서 채택된 것이 특수작전, 네이비실 팀이 헬리콥터로 잠입하여 순식간에 저택을 습격하고 파키스탄 경찰이나 군이 출동하기 전에 빠져나오는 작전이었다. CIA는 이를 위해 저택 모형을 제작하여 진입-습격-탈출의 과정을 구상했고, 나중에는 실물 크기의 저택을 만들어 실전 같은 예행연습을 반복했다.
실패를 가정한 수많은 시나리오와 이를 보완할 대책까지 완벽하게 설계한 후에도 내부적으로는 찬반논란이 계속됐다. 조 바이든 당시 부통령도 처음에는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바마는 숙고 끝에 4월29일 작전을 승인했고, 달빛 없는 밤인 5월2일 새벽 23명의 네이비실 팀이 블랙호크 헬리콥터로 목적지에 잠입, 20분만에 작전을 끝냈다. 백악관 상황실에서 오바마와 참모들이 실시간 지켜보는 가운데 들려온 “제로니모 신원 확인… 제로니모 이케이아이에이”라는 단어는 2년간의 정보수집과 습격계획이 절정에 이른 순간이었다. ‘제로니모’는 오사마 빈라덴의 코드명, ‘이케이아이에이’는 ‘작전 중 적 사살’(Enemy killed in action)이란 뜻이다.
지난 2일 시리아 북서부에 은신해있던 이슬람국가(IS)의 수괴 아부 이브라힘 알하시미 알쿠라이시가 미 특수부대의 습격을 받고 가족과 함께 자폭했다. 이 작전은 거의 모든 면에서 ‘넵튠의 창’을 연상케한다. 오사마 빈라덴만큼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미국과 세계의 큰 위협이었던 알쿠라이시를 바이든 대통령은 당선 직후부터 목표물 리스트에 올렸다. 그 역시 빈라덴처럼 자택을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고, 극도로 통신보안을 지켰으며, 음성이나 동영상 연설조차 하지 않아 소수의 추종자 외엔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워싱턴포스트에 의하면 작년 12월 은신지가 확인된 후 급습 결정에서 폭사에 이르기까지 백악관은 숨 막히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바이든과 군 지휘부는 급습 시기와 방법을 놓고 수많은 의견을 교환했으며, 해당 건물 모형을 만들어 작전계획을 세웠다. 지난 1일 바이든 대통령은 민간인 피해를 줄이기 위해 공습이 아닌 특수부대 급습으로 작전을 승인했다. 2일 오후 5시, 바이든 대통령,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 론 클레인 비서실장,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회의 보좌관, 최고위 국방 관리들이 작전을 실시간으로 보기 위해 상황실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특수요원들이 급습한 건물 3층에서 폭발음이 들려오면서 알쿠라이시 제거 작전은 성공으로 끝났다.
작년 8월 아프간 철군 과정에서 빚어진 혼란과 희생으로 궁지에 몰렸던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이번 작전에 대한 부담이 엄청났을 것이다. 이마저 실패하면 정치적으로 크나큰 대가를 치러야했을 테니 말이다. 오랜만의 승리를 등에 업은 바이든 대통령은 7일 또 다른 테러범 잡기에 나섰다. 지난해 카불공항 테러의 주범으로 알려진 ‘IS 호라산’ 수장 샤하브 알 무하지르에 1,000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고 본격적인 사냥에 돌입한 것이다.
2006년 미군 공습으로 사망한 알 카에다의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 2019년 미군에 쫓기다가 자살폭탄을 터뜨린 IS 수괴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 그리고 이번 작전까지 미국은 전 세계 테러범들에게 “우리는 지구 끝까지 추적해 반드시 잡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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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